파나라 (3.18.5.)

애초, 초 무왕이 권나라에 승리를 거두고 투민그곳의 윤으로 삼았는데 그가 반란을 일으키자 권을 포위하고 그를 죽였다. 권의 백성을 나처那處(호북성 형문현의 동남쪽)로 이주시키고 염오閻敖를 윤으로 삼았다. 문왕이 즉위함에 이르러 파나라와 함께 신나라를 정벌했는데 초군의 잔인함이 파군을 경악시켰다. 파나라는 초나라를 배반하고 나처를 공격하여 빼앗았다. 이어 초나라 국도의 성문을 공격했다. 염오는 용(호북성 감리현 동남쪽)을 헤엄쳐 건너 도망쳤고 문왕은 그를 문책하여 죽였다. 염오의 일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겨울, 파나라가 이를 틈타 초나라를 공격했다.


원문

(3.18.5.) 楚武王使以叛圍而殺之. 那處使閻敖尹之. 文王卽位人伐而驚其師. 人叛而伐那處取之遂門于. 閻敖而逸. 楚子殺之. 其族爲亂. 人因之以伐.





楚武王: 나라 이름으로 『당서·재상세계표宰相世系表』에 따르면 자성子姓으로 상나라 무정武丁 후예라고 한다. 현재 호북성 당양현當陽縣 동남쪽에 권성權城 있다.

使尹之: 투민 초나라 대부이다. 윤지尹之나라를 초나라의 현으로 삼고 투민을 그곳의 현윤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좌전·양공26년』의 “천봉술은 방성方城 밖의 현윤縣尹이다.”라는 기사를 보면, 초나라는 현을 관장하는 관리縣宰 현윤縣尹이라고 칭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혹은 현공縣公이라고도 했는데 『좌전·선공11년』의 “제후들과 현공들이 하징서를 처단한 것에 대해 모두 과인을 축하했다(諸侯縣公皆慶寡人)”라는 기사로 뒷받침할 수 있다. 『회남자·남명훈覽冥訓』의 고유의 주석을 보면, “초나라는 참람되게 왕을 칭하고, 또 그 나라의 현을 관리하는 이를 현공이라 불렀다.”는 설명이 있다. 노나라는 현인縣人 혹은 현재縣宰, 진나라는 현대부縣大夫라고 칭했다.

以叛: 투민이 권읍을 기반으로 초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 이는 주나라 초기 관숙과 채숙에게 은나라의 감시를 맡겼더니 은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것과 유사하다.

圍而殺之: 초 무왕이 투민을 죽였다


춘추시대 지도 - 파나라 


那處: 권나라의 원래의 주민과 신하를 모두 나처那處 이주시켰다. 이 역시 주나라 초기 은나라의 “완고하게 저항하는 은나라 유민”을 이주시킨 것과 같다. 나처那處 초나라 땅으로 현재 호북성 형문현荊門縣 동남쪽에 나구성那口城 있는데 이 곳에 해당한다

使閻敖尹之: 윤지尹之 나처 지방의 정치와 권나라의 옛 신민들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상은 초나라 무왕 때의 일이다.

文王卽位: 문왕은 무왕의 아들이다. 노나라 장공 5년이 곧 초나라 문왕 원년이다.

人伐: 신나라의 정벌은 『좌전·장공6년』의 일이다.

而驚其師: 초나라 군대가 파나라 군사를 놀라게 한 것. 도홍경陶鴻慶 통하고, 본문은 염오가 파나라 사람을 살육하여 파인을 두렵게 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한다. 『좌전별소左傳別疏』에 자세하다.

人叛而伐那處取之遂門于: 파나라가 나처를 취한 후 다시 진격하여 초나라 도성의 문까지 이르렀다. 그때 초 문왕은 영으로 천도하였는데, 영은 현재의 호북성 강릉현江陵縣 북쪽에 위치한 기남성이다. 나처는 그 동북쪽에 있다. 파국은 양양襄陽 부근에 해당한다.

閻敖而逸: 『수경·강수삼주江水三注』와 『방여기요方輿紀要』에 근거하면 현재의 호북성 감리현監利縣 동남쪽의 건항호乾港湖이다.

楚子殺之. 其族爲亂. 人因之以伐: 이 문구와 다음 해 『좌전』의 문구는 하나의 장인데, 후대인이 분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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