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무녀 (춘추좌전.5.21.2.)

여름, 크게 가물었다. 희공이 무녀와 곱사등이 불태워 비를 구하려 했다

장문중이 아뢰었다. “가뭄의 대비책이 아닙니다. 성곽을 수리하고, 먹을 것을 아끼며, 씀씀이를 줄이고, 농사에 더욱 힘쓰며, 물자의 나눔을 권장하는 일 등에 힘써야 합니다. 무녀와 곱사등이가 무슨 재주가 있겠습니까? 하늘이 그들을 없애려 했다면 애초 세상에 내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저들이 가뭄을 일으키는 재주가 있다면 저들을 불태워 가뭄을 더 심하게 만들 것입니다.희공이 그의 말을 따랐다. 이 해 기근은 들었지만 곡식에 큰 피해는 없었다.


원문 5.21.2.

大旱. 公欲焚巫·. 臧文仲: 非旱備也. 脩城郭·貶食·省用·務穡·勸分此其務也. ·何爲? 天欲殺之則如勿生; 若能爲旱焚之滋甚.公從之. 是歲也饑而不害.


관련 주석

大旱: 『예기·옥조玉藻: 8월이 되도록 비가 오지 않아 군주가 거동하지 못했다.” 정현은 “『춘추』를 보면, 주력으로 봄과 여름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재해가 되지는 않는다. 가을이 되어 과실이 익어갈 때도 비가 오지 않게 되면 비로소 기우제를 드린다. 기우제를 올려 비가 오게 되면 ‘기우제’를 드렸다고 기록하여 제사의 효험이 있었음을 기뻐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가뭄’을 기록하여 재해가 일어났음을 밝힌다.”고 설명한다. 두예는 이 설명을 채용하여, “기우제를 드려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한’이라고 쓴다. 여름에서 가을이 되도록 (비가 오지 않으면) 오곡을 모두 수확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를 근거로 보면, 본문의 “大旱’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는 뜻이 되는데 이것이 『춘추』가 의미하는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기우제를 드려 비가 오면 ‘우’라 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한’이라고 기록한다는 주장은 『곡량』(희공 11)의 것이다. 『춘추』 전체를 살펴보면 “大雩”라고 기록한 경우는 환공 5년에서 애공 15년까지 총 21차례가 있고, 不雨”라고 기록한 사례는 장공 31, 희공 2년과 3, 문공 2년과 10년 그리고 13년이다. 그 뒤로는 보이지 않는다. 大旱”이라고 기록한 경우는 본문과 선공 7년 두차례밖에 없다. 과연 정현이 주장한 것과 같은 범례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우제

大旱. 公欲焚·: 갑골문에 “□”자가 여러 번 보이는데, 글자 모양은 사람을 넓적다리를 교차시켜 불 위에 올려 놓은 형상이다. 사람을 태워 비를 구하는 풍속은 매우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예기·단궁하』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다. “가뭄이 들자, 목공이 현자를 불러 물었다. ‘비가 내린 지 오래라 왕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는데 의견이 어떠한가?’ ‘비가 내린 지 오래라고 병든 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은 불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무녀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어떠한가?’ ‘비가 내리지 않는다하여 어리석은 여인을 쳐다보고 그에게 비를 구하는 일은 취할 만한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 글을 보면 무와 왕은 별개의 두 명칭이다. 목공은 무와 왕을 위해하려 했고, 희공은 그들을 불태우려 했지만 기실 같은 일이다. 의 음은 왕이다. 『여씨춘추·진수편盡數篇』의 주석에 보면 “가슴이 튀어나와 하늘을 향해 있는 것(突胸仰向疾也)”이라 설명했고, 정현의 『예기·단궁』주석 역시 “왕은 얼굴이 하늘로 향해 있는 사람이다. 하늘에게 기도하면 그를 가엾게 여겨 비를 내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예의 주석은 이를 바탕으로 좀 더 확대하여 “척추병이 있는 사람으로 얼굴이 하늘을 향해 있어서 세간에선 하늘이 그 병을 애석하게 여겨 그의 코로 빗물이 들어갈까 걱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가뭄이 든다고 하였기 때문에 희공이 그를 불태우려 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국어·초어하』는 “남자는 격, 여자는 무 한다.” 『순자·왕제편』의 “길흉과 요상을 알아내는 일은 곱사등이 무녀와 절름발이 무당 일이다.” 또 「정론편」에서는 “비유하자면 마치 곱사등이 무녀와 절름발이가 스스로 (길흉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무와 왕이 스스로 그런 능력이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臧文仲: 非旱備也. 脩城郭·貶食·省用·務穡·勸分此其務也: 성곽을 수리하는 것에 대해, 공영달의 『소』는 복건의 주장을 인용하여, “나라에 흉한 일이 생기면 무도한 이웃나라가 군사를 일으킨다. 그래서 성곽을 수비하는 것이다.” 심흠한의 『보주』: “백성들이 먹을 것이 어려워지면 토목공사를 일으켜 백성들에 식량을 지급하는 것으로 이 또한 구황지책이다. 마치 『송사』에 보면 조변趙抃 성을 수리하도록 명을 내려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먹을 것을 마련하게 한 것과 같다.” 폄식貶食 먹을 것을 절약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곡례하』: “흉년이 들어 곡식이 익지 않으면, 군주의 밥상에 폐를 제로 올리지 않고, 말에게는 곡식을 먹이지 않고, 군주가 행차하는 길은 소제하지 않으며 제사에 편경이나 종을 매달지 않는다. 대부는 기장밥을 먹지 않고 사는 술을 마실 때 음악을 곁들이지 않는다.” 두예는 무색務穡에 대해 “색이란 검소함이다.”라고 설명한다. 즉 색을 아끼다()로 풀이했다. 『논형·명우편』과 이선이 주석한 『책위왕구석冊魏王九錫』에도 역시 “務嗇”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무색”과 “생용”의 뜻이 같아서 중복된다. 『논형』과 『문선』의 주석의 “무색務嗇”이라고 쓴 것은 색자의 뜻으로 쓴 것이다. 『상서·탕서』의 “우리 임금(탕왕)은 백성들을 가엽게 여기지 않고 농사를 제쳐두고서(舍我穡事) 왜 하나라를 정벌하려 하시는가?, 그리고 『사기·은본기』의 “舍我嗇事”가 역시 그런 뜻이다. 무색이란 농삿일에 힘쓰는 것을 말한다. 비록 가뭄이 들었더러도 농삿일을 제쳐두면 안 되는 것 역시 재난을 구제하는 방편이다. 『책위왕구석』의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게 하고, 농삿일에 힘쓰게 하다(勸分務本)”의 “무본”역시 “무색” 즉 농삿일에 힘쓰는 것이므로 색자의 뜻을 증명할 수 있다. 권분勸分 재물을 비축해 놓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곡식을 베풀도록 권함이다.

·何爲? 天欲殺之則如勿生: 응당의 뜻이다. 왕인지의 『석사』에 자세하다.

若能爲旱焚之滋甚.公從之. 是歲也饑而不害: 불해는 백성들에게 큰 재난이 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다. 혹은 장문중의 대책을 받아들여 실행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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