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헌공과 순식 - 옥의 티는 지울 수 있지만 말의 흠은 지울 수 없다 (5.9.4.)

9, 진 헌공이 타계했다. 이극里克과 비정이 문공(중이)을 국내로 들이려 했기 때문에 신생, 중이 그리고 이오를 따르는 무리들이 난을 일으켰다. 당초, 헌공은 순식荀息을 해제奚齊의 사부로 삼았다. 병이 들자 헌공이 순식을 불러 말했다. “이 어리고 유약한 아이를 대부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순식이 머리를 조아리고 대답했다. “신이 온 힘을 다하고 충·을 더할 것입니다. 일이 성사된다면 이는 군주께서 돌보셨기 때문이고, 잘못된다면 죽음으로 뒤를 따르겠습니다. “충과 정이 무엇인가?

“공실에 이롭다면 알고도 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 충이고, 돌아가신 군주를 송장하고 새 군주를 섬김에 양쪽에 시기나 의심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정입니다.” 이극이 해제를 죽이기에 앞서 순식에게 말했다. “세 공자를 따르는 무리들이 난을 일으키면 진 그들을 지지할 텐데 귀하는 어찌할 생각인가? “해제를 위해 죽을 것이다.” “무익한 일이네.“내가 선군과 한 말이 있으니 두 마음을 가질 수 없네. 약속을 지키는데 목숨을 아끼겠는가? 비록 무익하더라도 어찌 이를 회피할 수 있겠는가? 또 사람들이 자신의 선을 행하려는 마음에 누가 자신보다 못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는 두 마음을 품지 않으려 하면서 남에게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겨울 10, 이극이 해제를 상을 치르는 장막에서 살해했다. 『춘추』에 “군주의 아들을 살해했다(殺其君之子)”고 쓴 것은 아직 헌공의 장례를 마치기 전이기 때문이다. 순식이 해제를 따라 죽으려 하자 사람들이 만류했다. “탁자를 세워 보좌하는 것만 못하다.” 순식은 공자탁公子卓을 옹립하고 헌공의 장례를 치렀다. 11, 이극이 조정에서 공자탁을 살해했다. 순식은 그를 따라 죽었다. 군자가 말한다. 『시』(『대아·억)에 ‘오히려 백규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으나 말의 흠은 그럴 수 없다.’고 하였으니 순식에게 이같은 면이 있었다.


원문 5.9.4.

九月晉獻公. 里克·欲納文公故以三公子之徒作亂.

獻公使荀息奚齊. 公疾召之, : 以是藐諸孤辱在大夫其若之何?稽首而對曰: 臣竭其股肱之力加之以忠·. 其濟君之靈也; 不濟則以死繼之.公曰: 何謂忠·?對曰: 公家之利知無不爲忠也; 送往事居耦俱無猜貞也.

里克將殺奚齊先告荀息: 三怨將作·輔之子將何如?荀息: 將死之.里克: 無益也.荀叔: 吾與先君言矣不可以貳. 能欲復言而愛身乎? 雖無益也, 將焉辟之? 且人之欲善誰不如我? 我欲無貳而能謂人已乎? 

冬十月里克奚齊于次. 書曰殺其君之子, 未葬也. 荀息將死之人曰: 不如立卓子而輔之.荀息公子卓以葬. 十一月里克公子卓于朝. 荀息死之. 君子曰: “『所謂白圭之玷可磨也; 斯言之玷不可爲也, 荀息有焉.


관련 주석

九月: 하력 9월이고 다음에 나오는 10월·11월도 역시 하력이다. 진나라는 하력을 사용했다.

晉獻公: 『한비자·난이편難二篇』에선 진 헌공이 병합한 나라가 17, 굴복시킨 나라가 38, 12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전한다.

里克·欲納文公故以三公子之徒作亂: 세 공자는 신생·중이·이오를 가리킨다.

獻公使荀息奚齊: 이것은 헌공이 질병에 걸리기 이전의 일이다.

公疾召之, : 以是藐諸孤辱在大夫: 어리고 유약함의 뜻. 읽는데 현대의 적 같다. 구법은 『국어·주어중』의 “지금 이렇게 나약한 곳이 바로 양번이다(羸者陽)”와 같다. 왕인지의 『술문』에 자세하다. 문구의 뜻은 이 어린 아이를 그대에게 부탁한다는 의미로서 한 구로 읽어야지 두 구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욕재辱在”는 당시의 관용어로 은공 11년의 “과인의 안부를 묻기 위해 오셨으나(辱在寡人)”라는 문구와 글자는 같지만 뜻은 다르다.

其若之何?稽首而對曰: 臣竭其股肱之力加之以忠·. 其濟君之靈也; 不濟則以死繼之.公曰: 何謂忠·?對曰: 公家之利知無不爲忠也: 『국어·진어2』엔 “공실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힘써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바로 충입니다(可以利公室, 力有所能無不爲, 忠也).”로 쓰고 있다.

送往事居耦俱無猜貞也.: 죽은 군주를 가리키고, 새로운 군주를 말한다. 『송서·서선지전羡之傳』과 「사회전謝晦傳」에서 모두 이 문장을 인용할 때 “送往事君”으로 쓰고 있는데 『좌전』의 뜻을 채용하고 있다. 『양서·무제기』역시 이 문구를 인용할 때는 “事居”라고 쓰고 있으므로 반드시 오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는 죽은 군주와 새로운 군주를 모두를 가리킨다. 두 사람 모두 신하에게 시기함과 의심이 없다(謂兩者於我俱無猜疑). 『국어·진어2』는 “죽은 군주를 장례지내고 새로운 군주를 받들 때, 죽은 군주가 다시 살아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신하는 부끄럽지 않은 것이 바로 정입니다(葬死者, 養生者, 死人復生不悔, 生人不愧, 貞也).”로 쓰고 있다. 『사기·진세가』의 “죽은 군주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신하는 부끄럽지 않다(使死者復生, 生者不慙)”는 말은 『국어』의 뜻을 채용하고 있다. 또 『한비자·난삼편難三篇』의 “죽은 군주가 다시 살아나도 신하가 부끄럽지 않아야 바로 정이라 할 수 있다(使君復生, 臣不愧而後爲貞)”의 뜻한 바이기도 하다.

里克將殺奚齊先告荀息: 三怨將作: 삼원三怨 세 공자를 따르는 무리이다.

·輔之: 세 공자를 따르는 무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창의 『향초교서』는 “진은 본국으로서 진과 나란히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제나라로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지만 『사기·진세가』역시 “三怨將起, ·輔之”라고 전하고 있기 때문에 사마천이 근거로 한 판본 역시 “·”으로 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子將何如?荀息: 將死之.里克: 無益也.: 『국어·진어2: “그대가 죽고, 유자(해제)가 즉위할 수 있다면 그대의 죽음은 타당할 수 있소. 하지만 그대가 죽는다 해도 유자가 폐해지면 그대의 죽음은 헛수고일 뿐이오.

荀叔: 순숙은 곧 순식이다.

吾與先君言矣不可以貳: 궁색함(苟且)과 같은 말이다. 에는 구차하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좌전·소공13년』의 “진나라의 정령은 여러 가문에서 나와 궁색하고 심사숙고할 겨를이 없다(政多門, 貳偸之不暇)”에서 이투貳偸 유사한 뜻의 말이 이어진 것이다. 본문의 는 구차함의 뜻이다. 다케조에 고코의 『회전』은 이는 변함 뜻이라고 설명했는데 이 역시 통한다. 왕인지의 『술문』은 이는 특(변함/사특 같은 글자)자의 오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能欲復言而愛身乎?: 복언復言이란 한 말을 실천함이다.

雖無益也, 將焉辟之?: 회피함이다.

且人之欲善誰不如我? 我欲無貳而能謂人已乎?: 그만두게 하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나 자신이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이극에게 중이에 대해 충성을 하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뜻.

冬十月里克奚齊于次: 『사기·진세가』는 “상차喪次”라고 쓴다. 차는 곧 상차의 뜻이다. 심흠한沈欽韓 『보주』에서 「사상례」의 주석을 인용하여 “차란 상복을 입고 여에 거처하는 것이다”를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의려倚廬 상주가 거처하는 곳으로 나무로 만들고 풀을 병풍처럼 둘렀는데 흙을 바르진 않는다.

書曰殺其君之子, 未葬也: 아직 헌공의 장례가 끝나기 전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경문에서 “殺其君之子”라고 쓴 까닭을 해석했다.

荀息將死之人曰: 不如立卓子而輔之.: “탁자卓子”를 돈황의 당 사본에선 “公子卓”이라고 쓴다.

荀息公子卓以葬. 十一月里克公子卓于朝: 『국어·진어2』는 “이때에 해제와 탁자 그리고 여희를 죽였다”고 전한다. 『열녀전·얼패전孽嬖傳: “해제가 즉위하자 이극이 그를 죽였다. 탁자가 즉위하자 다시 살해했다. 그리고 여희를 죽이고 그녀를 채찍으로 내려쳤다.” 『사기』는 여희가 피살된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는데, 양옥승梁玉繩 『지의志疑』는 이에 대해 『사기』는 『좌전』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荀息死之: 주석 없음.

君子曰: “『所謂白圭之玷可磨也; 斯言之玷不可爲也: 옥의 티, 하자이다. 『시·대아·억』의 시이다.

荀息有焉.: 『국어·진어2: “군자가 순식을 평가했다. ‘그는 헌공과의 약속을 버리지 않았다(君子曰: 不食其言矣).’” 『사기·진세가』는 모두 『좌전』에 근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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