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헌공, 군주권 강화

대부 사위가 공자들을 사주하여 유씨 일족을 모두 죽였다. 곧이어 취(산서성 강현絳縣의 동남쪽)에 성을 쌓고 공자들이 그곳에 거주하게 했다. 겨울, 진 헌공이 취를 포위하고 공자들을 모두 살해했다.


원문

晉士使群公子盡殺游氏之族乃城而處之. 晉侯盡殺群公子.


관련 주석 

晉士使群公子盡殺游氏之族乃城而處之: 는 진나라의 읍이다. 『방여기요方輿紀要』에 따르면 현재의 산서성 강현絳縣 동남쪽 10리 떨어진 거상성車箱城이다. 그런데 심흠한沈欽韓은 『지명보주地名補注』에서 취는 읍의 이름이 아니라 취락鄕落의 통칭이라고 주장한다. 취가 취락에 대한 통칭이라 한다면 이 『좌전』의 내용으로 볼 때 오직 (진나라의) 도읍을 가리키는 말로 봐야 한다. 處之란 그들을 취에 거주하게 했다는 뜻이다.

진 헌공 이전과 이후


晉侯盡殺群公子: 『좌전·희공5년』: “진나라 환숙과 장백의 후손들이 무슨 죄가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살륙했으니 그것은 그들이 핍박한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닙니까?” 바로 이 사건을 가리킨다. 「진세가」: “헌공 8, 사위가 헌공에게 말했다. ‘진나라의 공자들의 수가 매우 많아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후에 또다시 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에 공자들을 모두 죽이도록 하고 취 성을 쌓아 그곳에 거주하게 하고, 취도聚都이라 하였다.” 그런데 강도는 현재의 익성현翼城縣이고, 현재의 강현 동남쪽으로 동일한 지명이 아니다. 취에 성을 쌓은 것은 올해의 일이고, 강에 성을 쌓은 것은 다음 해이니 시기도 같지 않다. 태사공(사마천)은 이 두 지명과 사건을 모두 하나로 봤는데 『좌전』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고동고의 『춘추대사표』에 자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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