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이淮夷 (5.13.2.)
여름, 희공이 (제 환공, 송 양공, 진 목공, 위 문공, 정 문공, 허 희공 그리고 조 공공과) 함鹹(하남성 복양현濮陽縣 동남쪽 60리)에서 회합을 가졌는데 회이淮夷가 기杞나라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또 왕실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원문 5.13.2.
夏,會于鹹,淮夷病杞故,且謀王室也.
관련 주석
⊙公會齊侯·宋公·陳侯·衛侯·鄭伯·許男·曹伯于鹹: 함鹹은 위나라 땅으로서 현재의 하남성 복양현濮陽縣의 동남쪽 60리 떨어진
곳이다. 문공 11년의 “적狄을 함鹹에서 패퇴시켰다”는
기사에 보이는 노나라 땅인 함과는 다른 지역으로 생각된다.
▣夏,會于鹹,淮夷病杞故: 『좌전』에선 회이淮夷에 대해 4번 언급하고
있다. 민족의 명칭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좌전·소공27년』의 “계씨가 백성들의 신뢰를 깊이 얻었는데 회이도 그와 함께 했다.”는
것이 이 예다. 혹은 국명으로 사용되었는데, 소공 4년의 신申나라와 함께 오나라의
회이를 정벌했다는 기사가 그 예다. 그러므로 회이의 거주지는 매우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동고의 『대사표』39에선 회이는 오늘날의 강소성 회안현淮安縣과 연수현漣水縣의 사이에 퍼져 있었다고 하지만 그의 말처럼 협소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왕응린王應麟의 『시지리고詩地理考』권4에서는 회이의 거주지는 한 곳이 아니며 서주에도 있었는데 즉 회수의 북쪽이다. 그리고 양주에도
있었는데 이곳은 회수의 남쪽이다. 회이의 부류는 한 종류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이 매우 옳다. 복사에 “추(회)이隹夷” 혹은 “곽이霍夷”, “북추(회)이北隹夷”등이 보이는데, 진몽가의 『추(회)이고隹夷考』(『우공』오권10기)에선 이들이 곧 회이라고 주장한다.
▣且謀王室也: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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