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전투 - 초나라에 대패한 송양공

초 성왕이 송나라를 정벌하여 정나라를 구원했다

양공이 전쟁을 준비할 때 대사마 고가 간언했다. “하늘이 상나라를 저버린 지 이미 오랜데 군주께서 부흥하려 한다면 용서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듣지 않았다

겨울 11월 기사일 초하루, 양공이 성왕과 홍강(하남성 자성현柘城縣 북쪽 30)에서 전쟁을 벌였다. 송나라는 이미 전열을 갖췄고 초군은 아직 강을 다 건너지 못했다. 사마가 아뢰었다. “저들은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적이 아직 도강하기 전에 공격해야 합니다.” 

양공이 대답했다. “그럴 수 없다.” 초군이 도강은 마쳤지만 아직 진영을 가다듬지 못했을 때 재차 공격을 주장했지만 양공은 “아직 공격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적이 전열을 갖춘 후에 송나라가 공격했지만 크게 패배했다. 양공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경대부의 자제들(門官)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모든 국인들이 양공의 행동을 탓했다

양공이 말했다. “군자는 상처입은 적을 거듭 공격하지 않고,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다. 고대에 전쟁을 할 때 적을 지세가 불리한 곳으로 몰지 않았다. 과인이 비록 망국의 후예이나 전열을 갖추지 않은 적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자어가 말했다. “군주는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강적이 불리한 지형에 놓여있고 대열을 갖추지 못한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도운 것입니다. 적을 험한 지세로 몰아 공격하는 일이 어찌하여 불가합니까? 그래도 오히려 패할까 두렵습니다. 오늘날 강적은 모두 우리의 적입니다. 비록 늙은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잡아야 하는데 그보다 젊은 반백의 적을 왜 잡지 못합니까? 백성에게 수치를 분명히 알게 하고 싸움을 가르치는 까닭은 적을 죽이기 위함입니다. 부상은 입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적을 왜 다시 공격하지 못합니까? 만약 거듭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애석하다면 애당초 상처를 입히지 말아야 하고, 늙은 적군을 그렇게 아낀다면 복종하는 것이 낫습니다. 군대는 유리하면 부리고 쇠북은 소리로 사기를 올립니다. 상황이 유리하면 이를 활용하고 적을 불리한 지형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북을 크게 울려 투지를 치솟게 하고 적이 무질서할 때 공격하는 것이 옳습니다.


원문 5.22.8.


人伐以救. 宋公將戰大司馬諫曰: 天之棄久矣君將興之弗可赦也已.弗聽. 冬十一月己已朔宋公人戰于. 人旣成列, 人未旣濟. 司馬曰: 彼衆我寡及其未旣濟也請擊之.公曰: 不可.旣濟而未成列又以告. 公曰: 未可.旣陳而後擊之師敗績. 公傷股. 門官殲焉. 國人皆咎公. 公曰: 君子不重傷不禽二毛. 古之爲軍也不以阻隘也. 寡人雖亡國之餘, 不鼓不成列.子魚: 君未知戰. 勍敵之人隘而不列天贊我也; 阻而鼓之不亦可乎? 猶有懼焉. 且今之勍者皆吾敵也. 雖及胡獲則取之何有於二毛? ·求殺敵也. 傷未及死如何勿重? 若愛重傷則如勿傷. 愛其二毛則如服焉. 三軍以利用也金鼓以聲氣也. 利而用之阻隘可也; 聲盛致志鼓儳可也.


관련 주석 

冬十有一月己已朔宋公人戰于: 은 하천의 이름. 현재 하남성 자성현柘城縣 북쪽 30리 떨어진 곳이다. 『명일통지』에 근거하면, 회수涣水 지류라고 한다. 회수는 『전국책·초책』의 “수수睢水 예수濊水 사이 지역을 취했다”라는 구절의 예강으로서 본래 회하澮河 상류인데 현재는 자취가 없다.

師敗績: 『좌전·장공11년』: “크게 패하는 것을 가리켜서 패적이라 한다.

 

춘추좌전 지도 - 홍강전투


人伐以救. 宋公將戰大司馬諫曰: 『사기·송세가』의 『정의』에서 『세본』을 인용하여, “송 장공의 손자의 이름이 고이고 대사마에 올랐다.” 또 『국어·진어4』에 따르면 공손고는 대사마가 되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 당시이다. 상세한 내용은 『좌전·희공23년』에 자세하다. 본문의 대사마는 바로 공손고임이 확실하다. 『좌전·희공19년』에 “사마자어”가 있는데, 사마는 곧 대사마와 같다. 상세한 것은 뒤의 주석을 참조. 이는 곧 당시 자어는 이미 대사마가 아니었음을 말한다. 『사기·송세가』는 이 본문의 말을 자어의 말로 보았고, 고염무 역시 『보정』에서 자어의 말임을 적극 지지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혜동과 심흠한의 『보주』에 그 내용이 상세하다. 『한비자·외저설좌상』에선 “우사마右司馬 구강購强”이라고 하는데 “구강”은 “”를 천천히 읽은 경우의 소리이다. 는 어부魚部 속한 글자이고 강 양부陽部 속해있어 고음에서 서로 통한다. 노문초盧文 구강을 고의 자 봤지만 이는 추측일 뿐이다. 노문초의 『종산찰기』와 양옥승의 『사기지의』를 참고하라. 최근 홍성洪誠 『대사마고간술평大司馬固諫述評』을 『남경대학학보』1970 4기에 싣고 있다. 

天之棄久矣: 여기서 상 곧 송나라이다. 고염무의 『일지록』과 왕국유의 『관당집립·설상說商』을 참조하라. 성욱盛昱 『울화관금문鬱華館金文·상구숙궤명商丘叔簋銘』의 “상구숙이 여궤旅簋 만들었다.” 또 “상은 송나라이다.”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송이라 말하지 않고 기상棄商이라 말한 까닭은 또한 “과인이 비록 망국의 후손이기는 하나”라는 말의 뜻으로도 알 수 있다. 염약거의 『잠구차潛丘·기사하記四下』에 상세한 설명이 있다. 현재 송대공과宋戴公戈가 전해지는데, 명문을 보면 “王商戴公”이란 구절이 있다. 완원은 『재종정이기관식齋鐘鼎彛器款識』에서 송나라를 상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다만 이 명문의 “상”은 “상을 내리다()”의 뜻으로 읽어야 옳다. 『시』의 「상송商頌은 즉 「송송宋頌이다.

君將興之弗可赦也已.弗聽: 두예: “군주께선 하늘이 버린 나라를 부흥시키려고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이므로 초나라를 용서하고 싸우지 않는 것만 못하다(不如赦勿與戰).” 초순의 『보소』: “『이아』에선 사를 사로 풀이한다. 두예의 주석으로 미루어보면 ‘불가弗可’와 ‘사야赦也’를 싸우지 말라(勿與戰)라는 세 글자를 가지고 해석한 것이다.” 유월의 『평의』는 “두예처럼 해석하면 ‘불가’에서 끊어 읽고, ‘사야이’ 세 글자 단독으로는 뜻이 성립할 수 없다. 이 다섯 글자는 하나의 구로 봐야 한다. 천명을 위반하면 반드시 큰 허물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하늘이 실로 상나라를 버렸는데 군주께서 부흥하시려고 한다면 이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 그래서 ‘弗可赦也已’라고 말한 것이다.” 유월의 설명이 옳다.

冬十一月己已朔宋公人戰于. 人旣成列, 人未旣濟: 는 완료하다. 홍수를 건넌 것은 적의 일부분이고 나머지는 아직 강을 건너는 중에 있었다.

司馬曰: 사마는 대사마의 생략이다. 『좌전·은공3년』: “대사마 공보를 불러 상공을 그에게 부탁했다”, 『좌전·환공2년』: “공보가가 사마가 되었다”, 『좌전·문공8년』: “대사마 공자앙公子卬 죽였다” 그 다음에 또 “사마가 관절이 꺽여 죽임을 당했다”는 기사가 있다. 이를 통해 보면 송에는 대사마란 관직이 있었고, 이를 줄여 사마라고 한 것이다. 두예는 『좌전·희공19년』의 “司馬子魚”에 근거해서 대사마와 사마를 두 명의 별개로 본다. 그리고 본문의 사마를 자어로 보고 있는데 정확하지 않다. 심흠한의 『보주』에 설명이 자세하니 참조하라.

彼衆我寡及其未旣濟也請擊之.公曰: 不可.旣濟而未成列又以告. 公曰: 未可.旣陳而後擊之師敗績: 『공양전』: “송 양공과 초나라는 홍수의 남쪽에서 싸움을 벌였다. 초나라 군사가 미처 다 건너지 못했을 때 사마가 주장했다. ‘적이 강을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해야 합니다.’ 양공은 반대했다. ‘그럴 수 없다. 군자는 적을 핍박해서는 안 된다고 들었다. 내 비록 망국의 후손이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적이 모두 강을 건넜지만 아직 전열은 다 갖추지 못했다. 사마가 다시 말했다. ‘적이 전열을 모두 갖추기 전에 공격해야 합니다.’ ‘그럴 수 없다. 내 알기로 전투를 알리는 북을 치지 않으면 아직 전열이 다 가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한다.’ 적이 전열을 모두 가다듬은 후 양공이 북을 울렸고 송나라 군사는 대패했다.

公傷股: 『사기·초세가』: “화살로 송 양공에게 부상을 입혔다.

門官殲焉: 문관門官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두예: “문관이란 성문을 지키는 자로서 행군/전투 중에는 군주의 좌우를 지킨다.『정의』: “『주례·호분씨』에 보면 ‘왕을 앞뒤로 호위하며 부속 병사들을 관장한다. 군사 행동이나 회맹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왕의 출행 시 왕을 보위하고, 왕이 나라 안에 있을 때는 왕궁을 지킨다. 나라에 큰 일이 발생했을 때는 왕문을 수비한다.’고 설명한다. 본문의 문관 역시 천자의 호분씨와 같은 관리의 부류이다.” 이것이 하나의 설명이다. 혜사기惠士奇의 『예설禮說: “문관은 군대의 장수이다. 송나라의 상술向戌 여문합좌사廬門合左師라고도 하고, 송나라의 화원華元 역시 여문廬門 머물렀는데, 이 두 군대는 모두 경 장수였다. 이들을 문관이라 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문관에 대한 설명이다. 심흠한의 『보주』: “문관은 곧 문자門子이다. 경대부의 자제들이 왕을 호위하였는데, 마치 당나라 때의 삼위三衛 같았다. 『좌전·양공9년』의 기사를 보면 대부의 문자들이 모두 정나라 군주를 호위하고 있다.” 이 역시 문관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만약 문관이 호분씨와 같은 부류라면 그의 지위는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좌전』에서 굳이 기록할 필요가 없으므로 두예의 해석은 따르기 어렵다. 혜사기와 심흠한의 설명은 모두 일리가 있고 심흠한의 설명이 더 그럴듯하다. 이란 섬멸함의 뜻이다.

國人皆咎公. 公曰: 君子不重傷: 중은 평성으로 읽어야 옳다. 이미 상처를 낸 후에 다시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不禽二毛: 사로잡다()의 뜻이다. 이모란 흑발 속에 백발이 간간히 보이는 것을 말한다. 『곡량전·희공11년』: “예로부터 두 번 혼내지 않으며 늙은이는 사로잡지 않는다(古者不重創, 不禽二毛)[1].” 『회남자·범론훈』: “옛날에는 정벌할 때에 어린이(黃口황구)를 죽이지 않고, 늙은이(二毛)를 사로잡지 않았는데, 고대에는 이런 행위를 의롭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웃음거리일 뿐이다.

古之爲軍也不以阻隘也: 두예: “지세의 유리함을 이용하여 승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조와 애는 같은 뜻의 글자를 연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월은 『평의』에서 이를 반박하여 조애阻隘이고, 여기서 조는 잡다/누르다()의 뜻이라고 한다. 즉 동빈구조로 보고서, 적을 지세가 매우 불리한 곳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유월이 주장이 더 나아 보이는데, 다음에 나오는 “阻而鼓之”란 문구가 그를 뒷받침한다.

寡人雖亡國之餘: 송은 은나라의 후예이며 은은 주나라에 멸망되었다는 뜻.

不鼓不成列.: 불고不鼓 공격하지 않다. 아직 전열을 가다듬지 않은 상대에게 공격을 알리는 북을 치지 않는다.

子魚: 君未知戰. 勍敵之人: 음은 경이고 강함의 뜻.

隘而不列: 금택문고본에는 “不成列”로 쓰고 있다. 『문선』의 이현의 주석에서 인용한 것과 같다. 앞의 글로 인해 “”자가 잘못 들어간 것 같다.

天贊我也: 도움이다. 초나라 군사가 험한 지형에 놓여 있거나 진열을 갖추지 못한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도운 것이라는 뜻.

阻而鼓之不亦可乎? 猶有懼焉: 우리 군사가 그들의 불리함을 이용하여 압박하고 전투를 알리는 북을 쳐서 공격하는 것이 왜 안되는 일인가? 그렇게 하더라도 오히려 승리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의미.

且今之勍者皆吾敵也. 雖及胡: 는 수, 음은 구이고 역시 수 뜻이다. ”는 『시·주송·대삼大芟』의 “늙은이胡考”와 같다. 모두 같은 뜻의 글자를 연용한 것이다. 두예는 “호구는 원로의 뜻”이라고 설명하여 호를 수식어로 본 듯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獲則取之何有於二毛?: 하유何有 고려하지 않는다의 뜻. 소공 원년의 “여러 유씨를 고려할 이유가 무엇입니까(何有於諸)?, 9년의 “어찌 천자를 안중에 두겠는가(何有於余一人)?, 『국어·진어』의 “부인을 안중에 두겠는가(何有於妻)?”등에 쓰인 하유가 모두 이 뜻이다.

·: 혜동의 『보주』: “『오자吳子』에서는 ‘무릇 나라의 법도와 군사를 지휘하는 방법은 반드시 예로써 가르치고, 위엄으로써 의를 삼아서 사람들이 수치심을 알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관리는 전투를 치르기에 적합해지고, 일반 소민들은 지키기에 충분한다.’라고 말한다. 『주서』는 또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도록 가르침을 보여준다.’” 명치는 한 가지 일이고, 교전도 한 가지 일이다. 먼저 수치심을 안 후에야 전술을 가르칠 수 있다.

求殺敵也. 傷未及死如何勿重?: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적이 나를 해칠 수 있다.

若愛重傷則如勿傷. 愛其二毛則如服焉: 두 개의 “”자는 모두 애석하게 여기다의 뜻이고, 두 “”자는 마땅하다의 뜻. 『석사』에 자세하다.

三軍以利用也: 以利用”은 유리하면 사용한다. 즉 당연히 적이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하고, 전열을 가다듬지 못한 유리한 상황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것이고, 상황이 불리하면 군사를 쓰지 않는 것이다.

金鼓以聲氣也: 『좌전·장공10년』의 “대저 전투란 용기가 관건이다(夫戰, 勇氣也).”를 보면 본문의 기 역시 용기의 뜻이다. 또 “한번 북을 쳐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는다(一鼓作氣)”란 말이 있는데 충분히 쇠북金鼓 병사들의 용기를 불어넣은 도구임을 알려주고 있다. 쇠북은 그것이 내는 소리에 의해 군사들의 사기를 제어한다. 그래서 성기聲氣라고 말한다.

利而用之阻隘可也: 적이 불리한 지형에 놓여 있을 때 압박하여 공격한다.

聲盛致志: 북소리를 크게 울리는 것을 “성성聲盛”이라 한다. 북소리를 크게 울려 사기를 드높이는 것을 “치지致志”라고 한다. 치지란 투지를 불태우게 하는 것이다.

鼓儳可也: 음은 참이다. 『국어·주어중周語中』의 “융적들은 죽음을 무릅쓰기도 하고, 도망칠 때는 위아래가 없다(夫戎翟冒沒輕).”에 대해 위소는 “참이란 나가고 물러날 때 상하가 무질서한 것을 말한다.” 고참鼓儳 적이 아직 전열을 갖추기 전에 북을 올려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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