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환씨 계우季友 (4.2.4.)

성계(계우)가 출생할 때 환공이 복초구卜楚丘의 아비에게 거북점을 치게 했다. “사내이고 이름은 우일 것입니다. 군주의 우편에서, 주사周社와 박사亳社의 사이에서 공실을 보좌할 것입니다. 계씨가 망하면 노나라 역시 쇠퇴할 것입니다.” 다시 시초점을 치게 했더니 대유괘大有가 건괘로 변하는 점괘를 얻었다. “존귀함이 부친과 같아져 군주처럼 존경받을 것입니다.” 성계가 출생했는데 손바닥에 마치 “우”자로 보이는 손금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름으로 삼았다.


원문

4.2.4. 成季之將生也桓公使卜楚丘之父卜之: 男也其名曰在公之右間于兩社爲公室輔. 季氏亡則不昌.又筮之大有. : 同復于父敬如君所.及生有文在其手曰, 遂以命之.


관련 주석 

成季之將生也桓公使卜楚丘之父卜之: 복초구의 부친은 그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아들의 이름을 빌린 것이다. 복초구는 『좌전·문공18년』과 『좌전·소공5년』에 보인다. 『좌전·소공3년』: “옛날 성계우는 환공의 막내아들이었는데 문강이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뱃속에 있을 때 점을 쳤었다.

: 男也其名曰在公之右: 재우在右는 등용됨(用事)의 뜻이다. 와 우가 운을 이룬다. 두 글자는 고음에서 똑같이 해부咍部 속한다.

間于兩社: 노나라에는 두 개의 사가 있다. 하나는 주사周社이고 다른 하나는 박사亳社이다. 천자와 제후 모두 삼조三朝를 두는데, 외조外朝·치조治朝·연조燕朝이다. 또 제후의 궁궐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고문庫門 외문外門이고 치문雉門 중문中門이며 노문路門 침문寢門이다. 외조는 고문의 안에 자리하여 송사와 비일상적인 업무를 결정하는 곳으로서 군주가 늘 참여하진 않는다. 치조는 치문의 안쪽에 위치하여 간혹 정조正朝라고도 부르는데 군주와 신하들이 매일 상견하는 장소이다. 고대에 시조視朝하는 의례를 보면, 신하들이 군주에 앞서 들어서 있고, 군주는 그 후에 노문을 나서 뜰에 자리를 잡은 후 신하들에게 두루 읍을 함으로써 조례를 마친다. 그리고 노침으로 물러나 정사에 대해 의견을 청취하고 신하들은 관부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천자의 조정엔 9개의 실 있고, 제후의 조정 좌우에도 역시 당연히 실 있다. 연조는 내조라고도 하는데 국정을 논의하면서 군주의 명이 있을 때 신하들은 내조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치문의 바깥 오른쪽에는 주사가 있고, 왼쪽에는 박사가 있다. 그리고 이 두 사의 사이에 외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기실 치조와 내조를 통틀어서 말한다. 치조에서는 비단 군신이 매일 서로 상견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여러 신하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설원·지공편至公篇: “계손행보가 아들에게 훈계했다. ‘내 너를 조정의 대신으로 삼아 후손 중에 군주를 잘 섬기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그를 신속히 처리하게 하려 한다(吾欲室之俠()於兩社之間也, 使吾後世有不能事上者, 使其替之益速)[1].’”라는 말이 있다. 즉 양사의 사이는 조정이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집정대신이 업무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양사에 있다는 말은 노나라의 대신이라는 뜻.

爲公室輔: 앞 두 구절의 사와 보는 운을 이룬다. 고음에서 두 글자는 어모부魚模部 속한다.

季氏亡則不昌.: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예로부터 두 가지가 있었다. 『사기·노세가』: “계우가 망명하면 노나라는 번성하지 못할 것(季友, 不昌).” 즉 계씨란 실제로 계우 한 사람을 가리키고, 망명하다로 해석한다. 복건: “계우가 망명하고 노나라의 두 군주(즉 자반과 민공을 말함)가 시해당한 것을 말한다.” 또 하나의 해석은 계씨란 계우의 자손들을 가리키고, 계씨 집안과 노나라가 그 흥망을 함께 할 것이라는 뜻으로 본 것이다.

계씨의 사읍이다. 『맹자』에 비혜공費惠公 보이고, 『여씨춘추·신세편愼勢篇의 “등나라와 비나라같은 작은 나라는 수고롭고 추나라와 노나라처럼 상대적으로 큰 나라는 편안하며(·則勞, ·則逸), 「초세가」의 “추·비·담·비 등은 작은 새와 같다(···, 鸗也)”는 기사를 보면 충분히 비나라가 경양왕頃襄王 시대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노나라와 마찬가지로 초나라에게 멸망당했다. 보다 상세한 것은 심흠한의 『보주』를 참조하라. 과 창은 운을 이룬다. 고음에서 두 들자는 모두 양당부陽唐部 속한다.

又筮之: 『주례·춘관·서인筮人』에선 “무릇 나라의 대사에는 먼저 시초점()을 치고, 그 후에 거북점()을 친다.”고 말하지만 『좌전』으로 고증하면 이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계를 임신했을 때 먼저 거북점을 치고 뒤에 시초점을 쳤다. 희공 4년의 기사를 보면, 진 헌공이 거북점을 쳐서 여희를 부인으로 삼았고, 희공 25년엔 진 문공이 양왕에 대해 거북점을 쳤으며, 애공 9년 조앙이 정나라를 구원하는데 그 여부를 물어보는데 있어서 거북점을 쳤는데, 이 모두 거북점을 먼저하고 시초가 그 뒤였다. 유독 애공 17년 위후가 먼저 시초점을 치고 뒤에 거북점을 치고 있다. 대체로 고대에 점을 운용하는데 있어서 복 거북을 서에는 시초를 사용하는데, 거북은 장, 서는 단 말하고, 동물을 식물보다 더 영험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복 앞에 두는 것이다.

大有: 대유괘大有卦 건괘乾卦 아래에 있고, 리괘離卦 위에 있다.

: 건괘는 위 아래가 모두 건괘로 구성되어 있다.

: 同復于父敬如君所.: 이 말은 시초점을 친 사람의 말이지 괘나 효의 사가 아니다. 동복우부同復于父 그의 존귀함이 부친과 같아진다는 뜻이다. 경여군소敬如君所 온 나라 사람이 그를 공경함이 마치 군주의 지위와 같다는 의미이다. 공영달의 『소』를 참조하라. 고형高亨 『좌전국어적주역설통해左傳國語的周易說通解: “대유괘는 위에 리괘가, 아래에 건괘가 있다. 건괘는 위 아래가 모두 건괘이다. 건은 아버지, 리는 아들을 가리킨다. 대유괘의 위의 리괘가 변하여 건괘가 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덕을 가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부친의 가르침을 고치지 않는다(無改於父之道)’로 ‘同復于父’를 설명할 수 있다. (은 옛 도를 실천하다는 뜻이다) 건괘는 또 임금을, 리괘는 신하를 상징한다. 대유괘의 위의 리괘가 변하여 건괘가 되었으므로 또한 신하가 그 군주와 동심임을 상징한다. 항상 군주의 곁에 머물기 때문에 ‘敬如君所’이라고 풀이한 것이다(는 왕; 는 처 뜻이다.)

及生有文在其手曰, 遂以命之: 「노세가」는 『좌전』의 뜻을 채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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