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진나라의 기근 - 거죽이 없는데 털이 어디에 붙겠는가(皮之不存,毛將安傅)

겨울, 나라가 기근이 들자 진에 사신을 보내 곡식을 팔 것을 요청했지만 진나라는 수락하지 않았다. 경정慶鄭이 말했다. “은혜를 배신하면 친한 이가 없고, 남의 재해를 복으로 여기면 불인이며, 인색이 지나치면 상서롭지 않고, 이웃을 분노케 하면 의롭지 않습니다. 네 가지 덕을 모두 잃고서 무엇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하십니까?” 

괵야가 말했다. “거죽이 없는데 털이 어디에 붙겠습니까?” 

경정이 말했다. “신의를 버리고 이웃을 배신하면 환란 때 누가 우리를 돕겠습니까? 신의가 없으면 환란이 일어나고, 도와줄 나라를 잃으면 필경 멸망할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괵야가 말했다. “원한은 덜지 못한 채 적의 힘만 두텁게 할 뿐이니 곡식을 주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경정이 말했다. “은혜를 배신하고 남의 재해를 복으로 여기면 백성에게 버림받습니다. 가까운 이도 오히려 원수가 될 판인데 하물며 원한을 품은 상대는 어떻겠습니까?” 혜공은 듣지 않았다. 경정이 물러나며 탄식했다. “군주는 이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원문 5.14.4.

使乞糴于人弗與. 慶鄭: 背施, 無親; 幸災, 不仁; 貪愛, 不祥; 怒鄰, 不義. 四德皆失何以守國?: 皮之不存毛將安傅?慶鄭: 弃信·背鄰患孰恤之? 無信, 患作; 失援, 必斃. 是則然矣.: 無損於怨而厚於寇不如勿與.慶鄭: 背施·幸災民所棄也. 近猶讎之況怨敵乎?弗聽. 退曰: 君其悔是哉!


관련 주석

使乞糴于人弗與: 『국어·진어3: “진에 흉년이 들자 혜공은 하상의 식량을 수송하게 하였다.” 혜공은 본래 곡식을 운반하려 했지만 괵야의 말을 듣고 중지한 것이다. 하지만 본문의 “人弗與”는 혜공 역시 본래 곡식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진세가」와 「진본기」역시 모두 이 일을 기재하고 있는데, 혜공이 신하들과 논의를 하여 상충되는 두 주장을 조율했던 것이다.

慶鄭: 경정은 진나라 대부이다.

背施, 無親: 은혜를 배신하면 친한 이를 잃을 수 있다는 뜻.

幸災, 不仁: 타인의 재앙을 행복으로 여기는 것은 인애의 도리가 아니다.

貪愛, 不祥: 재화의 이익에 인색하여 탐욕을 부리고 타인에게 주지 않으려고 하면 재앙이 이를 것.

怒鄰, 不義: 이웃나라를 분노케 하는 일은 도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四德皆失何以守國?: 괵역은 진나라 대부이다. 두예는 『국어·진어3』에서 혜공이 그를 구 칭한 것에 근거하여 “괵역은 혜공의 장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제후가 이성의 대부를 구라 칭했던 사실을 알지 못한 것으로 구는 존칭이고, 혜공은 소융자小戎子 소생(『좌전·장공18년』)이므로 괵역이 그의 장인이 될 수는 없다. 이돈李惇 『군경식소群經識小』의 설명을 참고하라.

皮之不存毛將安傅?: 『신서·잡사2: “위 문후가 궁궐을 나섰다가 어떤 사람이 옷을 뒤집어 입고 꼴을 지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옛 사람들은 가죽 옷을 입을 때 털이 있는 쪽을 밖으로 해서 입었다. 반구는 즉 이와 반대로 털을 안으로 해서 입은 경우이다). 문후가 물었다. ‘저들은 왜 옷을 뒤집어 입고 다니는가?’ ‘털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에 문후가 말했다. ‘아니, 가죽이 다 해지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음을 알지 못하는가?’라고 말했다.” 바로 이 뜻과 같다. 가죽을 진나라에 비유하고, 곡식을 파는 일을 털에 비유했다. 이미 진의 은혜를 배반한 상태이기 때문에 원한이 깊다. 비록 저들이 곡식을 사려는 것을 허락해도 마치 털에게 가죽이 없는 것과 같아서 어디 붙어 있을 곳이 없다는 것이 괵사의 뜻이다.

慶鄭: 弃信·背鄰患孰恤之? 無信, 患作; 失援, 必斃. 是則然矣.: 無損於怨: 곡식을 보내더라도 은혜를 배신한 것에 대한 진나라의 원한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괵역의 주장이다.

而厚於寇不如勿與.慶鄭: 背施·幸災民所弃也. 近猶讎之況怨敵乎?: 원적怨敵 가리킨다. 뇌물을 주기로 약속했었지만 주지 않았음이다.

弗聽: 혜공은 경정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退曰: 君其悔是哉!: 『사기·년표』: “혜공 5년 진나라에 흉년이 들었다. 곡식을 요청했는데 진이 이를 배신했다.” 「진세가」와 「진본기」는 또 “진이 군사를 일으켜 진을 정벌하고자 하였다”고 전한다. 양옥승梁玉繩 『지의志疑』는 이 기사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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