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예郤芮와 공자이오 (5.6.1.)
희공 6년 봄, 진 헌공이 가화賈華를 시켜 굴屈을 공격하게 했다. 이오는 굴을 지킬 수 없었고 굴의 백성과 결맹하고 도망쳤다. 적狄으로 가려 하자 극예郤芮가 말했다. “중이보다 늦게 도망치면서 같은 곳으로 가면 죄가 됩니다. 양梁나라로 가는 것이 낫습니다. 양나라는 진秦과 거리가 가까워 그곳에서 요행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오는 양나라로 향했다.
원문
5.6.1. 六年春,晉侯使賈華伐屈. 夷吾不能守,盟而行. 將奔狄,郤芮曰: “後出同走,罪也,不如之梁. 梁近秦而幸焉.” 乃之梁.
관련 주석
▣六年春,晉侯使賈華伐屈: 「진세가」: “헌공 22년, 굴읍을 정벌하게 했지만 함락시킬 수 없었다. 23년, 헌공이 결국 가화 등을 보내 굴을 정벌하여 함락시켰다.” 태사공의 기록에 따르면 본문은 제2차 정벌을 가리킨다. 유문기劉文淇의 『구주소증舊注疏證』에 자세하다. 가화賈華는 『좌전·희공10년』에
근거하면 진나라의 우행대부右行大夫이다.
▣夷吾不能守,盟而行: 굴인과 맺은 맹약은 훗날 서로 돕기를 약속한
내용이다. 우창의 『향초교서』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盟而行” 세 글자를 연문으로 보는 실수를 범했다.
▣將奔狄,郤芮曰: 극예郤芮는 희공 10년에서는
기예冀芮로 쓰는데,
기冀는 그의 식읍이다. 『좌전·희공33년』: “그에게
식읍 기를 되돌려주었다(復與之冀)”, 성공2년의 『소』에서 『세본』을 인용, “극표郤豹가 기예冀芮를 낳고, 기예가 결缺을 낳았으며 결이 극克을 낳았다.” 극 역시 그의 식읍으로서 읍으로 씨를 삼은 경우이다.
▣“後出同走: “주走”는 금택문고본에선 “분奔”으로 쓴다.
▣罪也: 여기서 말하는 죄란 여희가 두 공자를 모함했던
“두 공자 역시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고 하는 말에 대해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不如之梁: 양梁에 대해서는 『좌전·환공9년』의
“梁伯”의 주석에 보인다. 희공
19년 다시 진秦나라로 도망쳤다.
▣梁近秦而幸焉.”: 행언幸焉이란 양나라가 진秦 군주의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진晉나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乃之梁: 『국어·진어2』와 「진세가」 모두 이 사건을 기재하고 있는데 『좌전』과 대동소이하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