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 왕숙진생王叔陳生과 백여伯輿의 소송을 심리한 범선자 (춘추좌전.9.10.12)

 

주나라 왕숙진생王叔陳生과 백여伯輿의 소송



왕숙진생王叔陳生과 백여伯輿가 정권을 다투자 양왕은 백여를 지지했다. 왕숙진생이 분노하여 나라를 떠났다왕숙진생이 황하에 이르렀을 때 왕이 그를 복귀시키려고 사교史狡를 죽여 그에게 해명했다. 왕숙은 경사로 돌아가지 않고 황하 부근에 눌러 앉았다

진 도공이 왕실의 불화를 화해시키려고 사개를 파견했고 왕숙과 백여는 사개에 소송을 제기했다. 왕숙의 가재와 백여에 속한 대부 하금瑕禽이 왕궁의 뜰에 자리를 잡고 소송을 벌였고 사개가 이를 심리했다

왕숙의 가재가 말했다. “하찮은 신분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윗사람을 능멸하니 윗사람 노릇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금이 말했다. “과거 평왕께서 동천하실 때, 우리 일곱 종족이 왕을 시종하였고, 제사에 쓸 희생을 준비했는데 왕께서 그들을 신뢰하고 붉은소를 하사하며, ‘대대로 네 직분을 잃지 않게 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찮은 신분이었다면 어찌 동쪽으로 와서 정착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왕께서 어찌 우리를 신뢰하셨겠습니까? 오늘날 왕숙이 재상이 된 후로 정치는 뇌물로 이루어지고, 법의 집행은 총신들이 전횡하고 있습니다. 관부의 수장들의 치부가 매우 심하니 우리가 비천해지지 않을 재간이 있겠습니까? 대국은 이런 사정을 잘 헤아려 주소서! 아랫사람이라고 옳지않다고 하면 어찌 공정한 판결이라 하겠습니까?” 

범선자(사개)가 말하였다. “천자께서 지지하는 사람을 과군 역시 지지합니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범선자는 왕숙과 백여에게 서로 주장하는 바를 취합하게 하였는데 왕숙씨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왕숙은 진나라로 망명했다. 『춘추』에 이 사실을 적지 않은 까닭은 통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정공單靖公이 경사가 되어 왕실을 보좌했다.


원문

(9.10.12) 王叔陳生伯輿爭政王右伯輿. 王叔陳生怒而出奔. 王復之史狡以說焉. 不入遂處之. 晉侯使平王室王叔伯輿訟焉. 王叔之宰與伯輿之大夫瑕禽坐獄於王庭聽之. 王叔之宰曰: 篳門閨竇之人而皆陵其上其難爲上矣.瑕禽: 平王東遷吾七姓從王牲用備具王賴之而賜之騂旄之盟: 世世無失職.若篳門閨竇其能來東底(1)? 且王何賴焉? 今自王叔之相也政以賄成而刑放於寵. 官之師旅不勝其富吾能無篳門閨竇乎? 唯大國圖之! 下而無直則何謂正矣?范宣子: 天子所右寡君亦右之; 所左, 亦左之.使王叔氏伯輿合要王叔氏不能其契. 王叔. 不書不告也. 單靖公爲卿士以相王室.


(1) 를 완본에선 “저”로 쓴다. 여기서는 『석경』, 송본, 악본『석문』에 근거하여 정정했다.



주석

王叔陳生伯輿爭政: 두예: “두 사람은 왕의 경사이다.쟁정이란 정권을 다투다. 백여는 『좌전·성공11년』의 주석을 참조.

王右伯輿: 는 돕다.

王叔陳生怒而出奔. 王復之史狡以說焉: 사교는 왕숙진생이 싫어하는 사람이다. 양왕이 그를 죽여 왕숙진생의 비위를 맞춘 것이다.

不入遂處之: 왕숙은 주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황하 가에 눌러 앉았다.

晉侯使平王室: 은 화해. 양자 간의 분쟁을 조정.

王叔伯輿訟焉. 王叔之宰與伯輿之大夫瑕禽坐獄於王庭: 는 가신 중 우두머리. 대부는 백여 편에 있는 대부이다. 좌옥坐獄이란 쌍방이 서로 대면하여 송사하다. “좌”란 한 글자로 쓰기도 한다. 『좌전·소공23년』의 “주나라가 진나라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진나라는 숙손약과 주나라의 대부를 대질() 시켰다.”는 기사가 있다. 『좌전·희공28년』의 기사도 참조할 만하다.

聽之. 王叔之宰曰: 篳門閨竇之人而皆陵其上其難爲上矣.: 두예: “필문은 섶으로 만든 문이다. 규두는 작은 문이다. 벽을 뚫어 문을 만들었는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사각형이라 생김새가 규와 같다. 이 말은 백여가 미천한 신분임을 말한다.『석문』에선 “규는 판본에 따라 규 쓰기도 한다.”고 말한다. 두예에 따르면 그가 근거한 판본 역시 “규”로 썼다. 은 능멸함.

瑕禽: 平王東遷吾七姓從王牲用備具王賴之而賜之騂旄之盟: 두예: “평왕이 동천할 때 대신으로서 따른 자들이 7개 씨족이었다. 백여의 조상 역시 그들에 속한다. 왕을 위해 희생을 준비하여 제사를 드리는 일을 주관했다. 왕은 그들이 희생을 준비하는 일을 신뢰했 때문에 그들과 맹세하고 대대로 그 직을 맡게 했다. 성모騂旄 붉은 소이다. 소를 잡은 까닭은 중요한 맹세이기 때문에 개나 닭을 사용하지 않았다.

희용은 한 단어로 희생과 같다. 『상서·미자』의 “이제 은나라 백성들은 태연하게 신께 바치는 희생(牲用)을 훔치고 잡아먹어도 화를 입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는 기사로도 입증할 수 있다. 음은 신이다. 『논어·옹야』의 “얼룩소의 새끼라도 그 색이 온전히 붉고() 뿔이 제대로 나 있다면”의 주석을 보면 “신은 적색”이라고 풀이한다. 후대엔 “(+)”으로 쓰기도 한다. 『예기·단궁』에선 주나라 사람들이 붉은 색을 숭상하여 희생으로 붉은소를 썼다고도 말한다.

: 世世無失職.: 맹세의 말은 이보다 더 많은 내용이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요점만 말했다.

若篳門閨竇其能來東?: 완원의 본에선 “저”로 쓴다. 여기서는 『석경』, 송본, 악본『석문』에 근거하여 정정했다. 자신들 역시 세가이고 “비천한 신분”이 아니라고 항변한 것. 는 지이며. (평왕을 모시고) 동쪽으로 와서 정착(安止)했다.

且王何賴焉?: 왕숙의 신하가 자신들을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을 반박했다.

今自王叔之相也: 왕숙이 주나라의 상으로서 주나라 정권을 잡고 있음.

政以賄成: 공무가 뇌물에 의해 진행된다.

而刑放於寵: 『회남자·병략』의 주석에 “방은 맡겨지다()의 뜻”이라고 풀이. 두예가 “총신들이 제멋대로 형을 집행하고 법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완지생의 『교주흡유』에선 “왕의 총애가 현재형인지 과거형인지를 살펴 형벌에 차이가 있었다”라고 풀이했지만 옳지 않다.

官之師旅: 사려에 대해, 군대의 뜻이 있고, 또 관직의 이름이기도 하다. 왕인지의 『술문』과 『좌전·성공18년』의 주석을 참조.

不勝其富吾能無篳門閨竇乎?: 나라의 빈곤의 원인을 왕숙 정치의 탐욕으로 돌림.

唯大國圖之!: 대국은 진나라. 사개가 진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下而無直則何謂正矣?: 옳고 그름은 지위의 상하를 구분하지 않는데, 만약 지위가 낮다하여 옳은데도 옳다고 판정받지 못한다면 공평한 판결이라 할 수 없다는 뜻. 정은 공평의 뜻인데 정치의 정자로 읽어도 뜻은 통한다.

范宣子: 범선자는 사개이다.

▣”天子所右寡君亦右之; 所左, 亦左之.: 두예: “선자는 백여가 옳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 판단하려 하지 않고 왕의 뜻으로 미루었다.” 좌우는 돕다, 돕지 않다의 뜻.

使王叔氏伯輿合要: 『주례·추관·향사』의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은 죄의 내용을 요약하여(異其死刑之罪而要之)”에 대해 정현은 “요지란 판결의 요약이다.”라고 풀이했다. 『상서·강고』의 “要囚, 「여형」의 “有要 등이 모두 이런 뜻이다. 합요란 쌍방이 서로 다투는 쟁점과 증언 등을 취합한 것.

王叔氏不能其契: 판결의 증명서이다. 쌍방의 다툼에 양왕은 백여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그 판결문 역시 왕숙이 잘못한 것으로 나와 그는 계를 제출할 수 없었다.

王叔: 사개가 시킨 일로서 그에게 퇴로를 주기 위한 것.

不書不告也. 單靖公爲卿士以相王室.: 선정공은 두예의 『세족보』에 따르면, 선경공單頃公 아들이다. 『좌전·양공3년』에 보인다. 선정공은 왕숙을 대신하였다. 즉 왕숙은 주나라 왕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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