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융씨姜戎氏를 간첩으로 오인한 범선자 (춘추좌전.9.14.1.)


강융씨姜戎氏



양공 14년 봄, 오나라가 진나라에 초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했음을 알렸다. (노나라의 계손숙 숙로가 진나라의 사개, 제인, 송인, 위인, 정나라의 공손채, 조인, 거인, 주인, 등인, 설인, 기인, 소주인 그리고 오나라와) (하남성 위씨현尉氏縣 서남쪽. 정나라)에서 회합하였는데 오나라를 위해 초나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범선자는 오나라의 부덕한 행위를 질책하고 오나라 사신을 물리쳤다.

범선자가 거나라의 공자무루公子務婁를 잡아들였는데 초나라와 통교하고 사신을 왕래했기 때문이다.

융의 군주戎子 구지駒支를 잡아들일 때 범선자가 직접 회합의 조정에서 책망하여 말했다. “이리 오라, 강융씨姜戎氏! 과거 진이 네 선조 오리吾離를 핍박하고 과주瓜州에서 축출하자 네 선조 오리는 거적을 두르고 가시덤불을 뒤집어쓴 채 우리 선군께 와서 의탁하였다. 우리 선군 혜공께선 넉넉지 않은 땅을 가지셨지만 너희에게 일부를 떼어주고 먹고 살게 하셨다. 작금에 제후들이 과군을 섬기는 것이 예전같지 못한 까닭은 말이 누설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너희에게서 비롯된 책임이다. 내일 아침의 회합에 너희는 참석하지 말라, 참석하면 잡아넣을 것이다.

구지가 대답하였다. “과거 진나라가 그 수를 믿고 토지를 탐하여 우리 융적들을 쫓아냈습니다. 혜공께서 큰 덕을 밝히시어, 우리 융족들은 사악四獄의 후손이라 말씀하시며 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남쪽 변방 땅을 내주셨는데 그곳은 여우와 이리가 살고 승냥이가 울던 땅이었습니다. 우리 융적들은 그 땅의 가시나무를 쳐 없애고 이리와 승냥이들을 몰아내고 선군의 땅을 침략하지 않고 배신도 하지 않는 신하가 된 이후로 지금까지 딴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과거 문공께서 진과 함께 정나라를 정벌할 때, 진이 몰래 정나라와 동맹을 맺고 그곳에 수비군을 두었으니 이 때문에 효의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 5.33.3.) 당시 진은 적의 선봉을 막고 융은 배후에서 싸워 적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는데 실로 우리 융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사슴을 잡는 일에 비유하자면, 진은 뿔을 잡고 우리 융은 뒷다리를 잡아 함께 사슴을 쓰러뜨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설사 우리가 죄를 지었더라도 벌을 면할 수 없단 말입니까? 그후로 진의 수많은 전쟁에 우리 융들은 서로 교대로 때를 어기지 않고 귀국의 집정을 따라 효산에서 싸울 때의 마음으로 섬겼으니 어떻게 감히 멀리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 실로 집정의 관속들에 빈틈이 있어 제후들을 떠나게 만든 것인데도 우리 융에게 죄를 물으십니까! 우리 융들이 먹는 것, 입는 것이 중화와 다르고 예물도 다르며 서로 말도 통하지 않으니 어떻게 내통할 수 있단 말입니까? 회합에 참석하지 못해도 부끄러울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는 「청승(『시·소아』)을 읊고는 물러났다

선자가 융에게 사과하고 회합에 참석하게 하여 자신은 참소를 믿지 않는 화락한 군자임을 보였다.

이때 자숙제자子叔齊子가 계무자를 수행하여 회합에 참석했는데 이후로 진나라는 노나라의 예물과 공물을 경감해주고 그 사신을 더욱 공경하게 대하였다.


원문

(9.14.1.) 十四年春告敗于. 會于故也. 范宣子之不德也以退.

莒公子務婁以其通使也.

將執戎子駒支范宣子親數諸朝: ! 姜戎氏! 人迫逐乃祖吾離瓜州乃祖吾離被苫蓋·蒙荊棘以來歸我先君我先君惠公有不腆之田與女剖分而食之. 今諸侯之事我寡君不如昔者蓋言語漏洩則職女之由. 詰朝之事爾無與焉. , 將執女.對曰: 人負恃其衆貪于土地逐我諸戎. 惠公蠲其大德謂我諸戎四獄之裔毋是翦棄. 賜我南鄙之田狐狸所居豺狼所. 我諸戎除翦其荊棘驅其狐狸豺狼以爲先君不侵不叛之臣至于今不貳. 文公人竊與而舍戍焉於是乎有之師. 禦其上戎亢其下師不復我諸戎實然. 譬如捕鹿人角之諸戎掎之. 戎何以不免? 自是以來之百役與我諸戎相繼于時以從執政志也豈敢離? 今官之師旅無乃實有所闕諸侯而罪我諸戎! 我諸戎食衣服不與華同贄幣不通言語不達何惡之能爲? 不與於會亦無瞢焉.而退. 宣子辭焉使卽事於會成愷悌也.

於是子叔齊子季武子介以會自是人輕幣而益敬其使.


주석

十四年春告敗于: 오나라가 초나라에 패배한 사건은 작년의 『좌전』 참조. 오나라는 진나라와 동맹했으므로 통보했다.

會于: ‘향’에 대해선 『춘추』주석을 참조.

故也: 두예: “오나라를 돕기 위해 초나라를 정벌하는 일을 논의하였다.

范宣子之不德也以退: 상성으로 책망하다. 이는 향에서 함께 논의한 바의 결과이다. 제후들 다수가 초나라 정벌을 꺼려했거나 혹은 진 역시 오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한 일을 무리한 짓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초나라가 국상 중에 있는 틈을 노려 친 것은 도덕적인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나라의 청을 거절했다.

莒公子務婁以其通使也: 두예: “거나라는 초나라에 붙어 매년 노나라를 공격했다.” 통초사는 초나라와 사신을 왕래한 것이다.

將執戎子駒支: 두예: “구지는 융의 군주戎子 이름이다.

范宣子親數諸朝: 맹회를 여는 곳에도 위계에 따라 신하들이 서는 자리를 설치한다.

: 姜戎氏! 人迫逐乃祖吾離瓜州: 과주는 과거의 주석에서 현 감숙성 돈황으로 해석했지만 고힐강은 현 진령산맥 남북 양쪽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사림잡식·과주』에 상세하다. 과주에 거주하는 융은 본래 두 성씨가 있다. 하나는 강성으로서 본문의 사례이고 다른 하나는 윤성으로서 『좌전·소공9년』의 “그런 까닭에 윤성의 무도한 이들이 과주에 거주하게 되었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두예는 이 둘을 하나로 봤지만 정확하지 않다. 전조망의 『경사문답』과 전대흔의 『십가재양신록』에 자세하다.



진나라-강융-주변 이민족-춘추시대


乃祖吾離被苫蓋·蒙荊棘以來歸我先君: 음은 산이다. 산개苫蓋 동의사이다. 여기서의 뜻은 흰띠풀로 만든 옷(身物)이다. 옷 등을 걸치다(: )와 같다. 몽은 쓰다. 몽형자는 머리에 가시나무로 짠 장신구를 쓴 것.

我先君惠公有不腆之田: 많음의 뜻.

與女剖分而食之. 今諸侯之事我寡君不如昔者蓋言語漏洩則職女之由: 책임. 즉 너희들 때문이다라는 뜻. 앞글을 이어 원인을 나타내는 말. 『사전』에 용례가 보인다.

詰朝之事爾無與焉. , 將執女.對曰: 人負恃其衆貪于土地逐我諸戎: 서융은 여전히 부락사회였다. 구지는 각 부락의 수장이었기 때문에 여러 융족이라고 말했다.

惠公蠲其大德: 음은 연이고 밝히다의 뜻.

謂我諸戎四獄之裔: 두예: “사악은 요 임금 시대의 방백으로서 강성이다. 멂의 뜻이고 주 후예이다.” 그러나 사실 예주는 동의사이다. 『이소』의 “제 고양의 후예(苗裔묘예)여”에 대해 왕일의 주석: “예 뜻이다.

毋是翦棄: 도치구이다. 勿翦棄是 뜻이다. 『시·소남·감당甘棠』의 모『전』: “전 버림 뜻이다.” 전과 기는 뜻이 비슷한 말의 연용이다.

賜我南鄙之田狐狸所居豺狼所: 음은 호이고 소리 지르다. 호리소거狐狸所居, 시랑소호豺狼所 형용구가 도치된 예로서 앞의 “전”을 수식한다.

我諸戎除翦其荊棘驅其狐狸豺狼以爲先君不侵不叛之臣至于今不貳. 文公人竊與而舍戍焉: 두다. 『좌전·희공30년』의 “진나라의 군주가 기뻐하고 정나라와 결맹했다. 그리고 기자와 봉손 그리고 양손을 보내 정나라를 수비하게 했다.”는 사건을 말한다.



효산전투-춘추시대


於是乎有之師: 『좌전·희공33년』의 기사 참조. (참고. 효산전투)

禦其上戎亢其下: 음은 항이고 막아내다.

師不復: 『공양』의 “필마와 전차 중 돌아간 것이 없었다.

我諸戎實然: 바로 우리 융이 진나라 군사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뜻.

譬如捕鹿人角之諸戎掎之: 뿔을 잡다. 음은 기이다. 어떤 학자는 기가 상성으로 쓰여 뒷발을 잡아끌었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인신하여 앞에서 공격을 막아내는 것을 각, 뒤에서 끌어당기는 것을 기라고 한다. 각은 곧 앞의 “앞에서 막아내고”, 기는 “뒤에서 저항하여”를 말한다. 『후한서·원소전』의 「벌허선격伐許宣檄」의 “대군이 물밀듯이 황하를 건너 선봉대를 막아내고(), 형주 아래의 완과 섭이 그 후위를 맡았다().”는 말은 『좌전』의 용례를 따른 것이다. 초순의 『보소』를 참고한 설명이다.

: 음과 뜻은 넘어뜨리다()와 같다. 북지는 진나라를 물리쳤다는 의미.

戎何以不免?: 면은 죄를 면하다.

自是以來: 효산의 전투 이래로.

之百役與我諸戎相繼于時: 진나라가 치르는 전투에서 우리 여러 융들은 함께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상계우시相繼于時 단절된 적이 없었다는 의미.

以從執政: 종은 추종함.

志也: 효의 전투에 지원했던 그 마음과 같이.

豈敢離?: 같고 멀리하다·어기다.

今官之師旅無乃實有所闕: 진나라의 집정 대신을 가리킨다. 사려師旅 『좌전·성공18년』의 주석 참조. 관지사려는 진나라 집정이다. 대놓고 집정을 배척하지 않고 아래의 관속을 지칭하는 것은 외교적 수사이다.

諸侯: 그렇게 함으로서 제후들이 배반하게 만들었다.

而罪我諸戎! 我諸戎食衣服不與華同贄幣不通: 제후들과 서로 왕래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言語不達: 역시 통함의 뜻.

何惡之能爲? 不與於會亦無瞢焉.: 음은 몽, 부끄러워하다.

而退: 『시·소아』. 가운데 구절에 “온화한 군자는 참언을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宣子辭焉: 이고 사과함의 뜻.

使卽事於會成愷悌也: 두예: “성개제成愷悌 참언을 믿지 않음이다. 경문에 쓰지 않은 까닭은 융이 진 나라에 속했으므로 단독으로 회맹에 참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不得特達).” 특달이란 독립적으로 회합을 갖다.

於是子叔齊子季武子介以會: 자숙제자는 경문의 숙로이다. 숙씨는 자숙씨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면 『좌전·소공2년』의 숙궁을 자숙자라 하고, 『좌전·소공21년』에 숙첩을 자숙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기·단궁하』에 자숙경숙이 언급된다. 제자는 두예에 따르면 그의 자라고 하고, 고염무는 숙로의 시호라고 주장한다. 어떤 학자는 숙로의 부친의 이름이 영제여서 그의 아들이 제 삼을 수는 없다고도 말한다. 그러므로 역시 제를 시호로 삼을 수도 없다.

自是人輕幣而益敬其使: 폐는 폐백인데 이 말로 모든 예물을 바치는 것을 대표해서 말한 것. 진나라는 노나라의 공물 등을 감경해 주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