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나라에 복수한 노나라 계무자 (춘추좌전.9.12.1.)
거나라에 복수한 노나라
양공 12년 봄, 거나라가 우리 동쪽 변방을 정벌하여 태台(산동성 비현費縣의 동남쪽)를 포위했다. 계무자가 태읍을 구원하고 이어 운鄆으로 쳐들어가 종鐘을 탈취하여 양공의 식기(盤)로 만들었다.
원문
(9.12.1.) 十二年春,莒人伐我東鄙,圍台. 季武子救台,遂入鄆,取其鐘以爲公盤.
주석
⊙十有二年春王二月: 『교감기』: “『석경』과 송본 그리고 족리본은 ‘이’를 ‘삼’으로 쓰고 있는데, 틀리지
않다.” 그러나 금택문고본에선 그대로 “이”로 쓴다. 여기서는
고치지 않는다. 정월 21일 정묘일이 동지였고 건자이며 윤월이
있다.
⊙莒人伐我東鄙,圖台: 『춘추』에서 읍을 포위한 사건을 기록한 사례는 여기가 처음이다. 송고항宋高閌의 『춘추집주』에
설명이 자세하다. “태台”를 『곡량』에선 “태邰”로 쓴다. 두 글자는 통한다. 현 산동성 비현費縣의 동남쪽 12·3리 떨어진 곳이다.
▣十二年春,莒人伐我東鄙,圍台. 季武子救台,遂入鄆: 『춘추』의 주석 참조.
▣取其鐘以爲公盤: 반盤은 아름다운 식기이다. 『좌전·희공23년』의 “저녁 식사를 담은 그릇에 예물을 넣었다(乃饋盤飧)”는 문구로 입증할 수 있다. 또는 몸을 씻는 그릇으로 볼 수도 있다. 『예기·대학』의 『정의』에 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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