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도공의 민생 안정책 (춘추좌전.9.9.9.)

 


진 도공이 귀국했고, 민을 안정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위강魏絳은 백성에 은혜를 베풀기를 청하였는데 공실과 대부들이 쌓은 재화를 풀어 백성에 빌려주게 했다. 군주 이하 부를 축적한 자들이 모두 재화를 내놓았다. 이 때문에 나라에 재화가 적체되지 않았고 곤경을 겪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공이 산과 늪지의 산물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자 탐욕을 추구하는 백성도 사라졌다. 기도할 때 희생 대신 예물을 사용했고, 빈객을 접대할 때 한 마리의 희생만 사용했으며, 예기는 새로 만들지 않았고, 수레와 의복은 수요를 따르게 했다. 일년 간 이 정책을 실행하니 나라에 법이 서게 되었다. 진나라가 세 번 군사를 일으켰지만 초나라는 이에 대적할 수 없었다.


원문

(9.9.9.) 晉侯謀所以息民. 魏絳請施舍輸積聚以貸. 自公以下苟有積者盡出之. 國無滯積亦無困人; 公無禁利亦無貪民. 祈以幣更賓以特牲器用不作車服從給. 行之期年國乃有節. 三駕而不能與爭.



주석

晉侯謀所以息民: (전쟁으로 지친) 백성들의 휴식과 양생을 위한 방안


춘추시대 지도. 진나라


魏絳請施舍: 『좌전·선공12년』의 주석 참조.

輸積聚以貸: 는 운반하다. 적취積聚 재화를 가리킨다. 재물을 운반하여 백성들에게 빌려주다.

自公以下苟有積者盡出之. 國無滯積: 재화가 유통되어 생산에 이용되었다.

亦無困人: 생활고를 알려 오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公無禁利: 군주 소유의 산과 연못의 생산물을 백성들과 공유하다.

亦無貪民: 백성들 역시 탐욕을 부리지 않음.

祈以幣更: 기도할 때 희생을 쓰지 않고 가죽과 폐물로 대체했다. 피는 여우 등의 가죽이고, 폐는 비단을 말한다. 『예기·월령』과 『여씨춘추·중춘기』에 모두 “기도에 희생을 쓰지 않고 규와 벽 등의 옥과 피폐를 사용한다.”라고 쓰는데 이와 비슷한 부류이다. 혜동은 경을 경자로 읽었는데 『관자·사시편』의 “신께 기도하여 경색된 바를 소통시켰다(謹禱弊梗)”라는 문구를 근거로 삼았다. 왕인지 역시 폐와 폐 같으며 경 禱祭라고 주장했다. 상세한 설명은 그들의 『보주』와 『술문』을 참조. 그러나 그들이 사례로 든 것들은 본문과는 성격이 다르므로 신뢰할 수는 없다.

賓以特牲: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는 한 마리의 희생을 사용할 수 있게 함. 일생一牲이라고 부른다.

器用不作: 새로운 예기를 만들지 않고 이전의 것을 그대로 쓴다.

車服從給: 수레와 복식을 필요한만큼 만들고 남아돌 정도로 만들지 않는다.

行之期年: 기는 기 같다. 1년의 뜻.

國乃有節: 『좌전·양공11년』의 “초나라는 아직 절도가 서지 않았다(未節也), 『국어·월어』의 “오늘날 월나라 역시 법도가 서 있다(國亦節矣)” 등에서 절자가 모두 본문의 절자와 뜻이 같다. 절자의 뜻은 매우 광범위한데 예절이나 법도 등을 모두 절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킬 바를 잘 지키는 것 역시 절이라고 부른다.

三駕而不能與爭: 가는 출병을 위해 전차를 준비하는 것. 두예는 “삼가란 세 번 군사를 출병함이다. 즉 양공 10년 우수에서, 11년 향에서 그리고 그해 가을 정나라의 동문에서 열병식을 거행했다. 이후로 정나라는 진나라에 결국 복종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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