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라의 계무자, 제나라의 최저, 송나라의 황운이 진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정벌하다 (춘추좌전.9.9.5.)

 


겨울 10, 제후들이 정나라를 정벌했다

경오일(11), 계무자, 제나라의 최저, 송나라의 황운이 진의 순앵과 사개의 중군을 따라 정나라의 전문(동문)을 공격했다. 위의 북궁괄北宮括, 조나라, 나라는 진의 순언荀偃과 한기韓起의 상군을 따라 사지량師之梁(서문)을 공격했다. 등나라와 설나라는 난염欒黶과 사방士魴의 하군을 따라 북문을 공격했다. 기나라와 예나라는 조무와 위강의 신군을 따라 길가의 밤나무를 벌목하여 길을 내었다. 갑술일(15), 범수氾水 근처에 주둔했다. 진 도공이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병기를 잘 벼리고 건량을 충분히 준비하라. 노약자는 돌려보내고 병든 병사들은 호뢰虎牢로 보내 머물게 하라. 작은 과실을 범한 병사들을 사면하고 정나라의 도성을 포위하라.


정나라 사람들이 겁을 먹고 사자를 보내 화친을 도모했다. 상군의 장수 중항헌자中行獻子(순언)가 말했다. “바로 성을 포위하고 초나라가 구원하는 것을 기다려 그들과 일전을 벌어야 합니다. 초를 이기지 못하면 정나라는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군의 장수 지무자(지앵)가 말했다. “동맹을 수락하고 군사를 물려 초군을 지치게 해야 합니다. 사군을 삼분하여 제후들의 정예와 함께 공격해 오는 초군을 맞아 교대로 싸우면 아군은 피로하지 않지만 적은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성을 포위하고 농성하다가 초군과 결전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병사들의 뼈를 땅바닥에 뿌려가며 통쾌함을 느끼는 방법으로는 싸울 수 없습니다. 큰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군자는 머리를 쓰고 소인은 힘을 쓰는 것이 선왕의 법도입니다.” 제후들 모두 싸움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정나라와 동맹을 허락했다. 11월 기해일(11), 에서 동맹을 맺었고 정나라가 복종했다.


동맹을 맺을 때 정나라의 육경, 공자비公子騑(자사), 공자발公子發(자국), 공자가公子嘉(자공), 공손첩公孫輒(자이), 공손만公孫(자교), 공손사지公孫舍之(자전)와 여러 대부 및 자제들이 모두 간공을 시종했다

진의 사장자士莊子(사약)가 맹약을 작성하고 말하였다. “오늘 결맹 이후로 정나라가 진의 명을 따르지 않거나 혹 다른 뜻을 품는다면 이 맹세에 따를 것이다!” 

공자비가 급히 달려나와 말하였다. “하늘이 정나라에 재앙을 내려 두 대국 사이에 놓이게 하셨다. 대국은 덕을 베풀지 않고 난으로 맹세를 강요하여, 신령이 정결한 제사를 흠향하지 못하게 하고, 백성들은 산물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하였으며, 부부는 극심한 곤경에 빠졌지만 찾아가 하소연할 곳도 없게 되었으니 오늘 결맹 이후로 정나라가 예와 힘을 겸비하고 우리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나라를 따르지 않고, 감히 딴 마음을 품는다면 이 맹세처럼 될 것이다.” 

순언이 말했다. “맹세를 고쳐라!” 

공손사지가 말했다. “영명하신 신께 맹세를 밝혔는데 만약 맹세를 고칠 수 있다면 대국 역시 배반할 수 있습니다.” 

지무자가 헌자(순언)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실로 부덕하고 저들에게 맹세를 강요한 것이니 어찌 예라 할 수 있겠는가? 예가 아니면 무엇으로 동맹을 주관할 것인가? 일단 결맹하고 물러나 덕을 닦고 병사들을 쉬게 한 후 다시 온다면 반드시 정나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필 오늘일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가 덕으로 대하지 않으면 백성이 우리를 버릴 것이니 어찌 정나라만의 문제인가? 휴식을 취하고 평화로 화목하게 지낸다면 먼 나라도 와서 귀의할 것이니 정나라만 의지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에 동맹을 맺고 군사를 돌렸다.  



원문

(9.9.5.) 冬十月諸侯伐. 庚午季武子·齊崔杼·宋皇荀罃·門于衛北宮括··荀偃·韓起門于師之梁··欒黶·士魴門于北門·人從趙武·魏絳斬行栗. 甲戌師于. 令於諸侯曰: 修器備盛餱糧歸老幼居疾于虎牢, 肆眚, .

人恐乃行成. 中行獻子: 遂圍之以待人之救也而與之戰. 不然, 無成.知武子: 許之盟而還師以敝. 吾三分四軍與諸侯之銳以逆來者於我未病不能矣. 猶愈於戰. 暴骨以逞不可以爭. 大勞未艾. 君子勞心小人勞力先王之制也.諸侯皆不欲戰乃許. 十一月己亥同盟于服也.

將盟六卿, 公子騑·公子發·公子嘉·公孫輒·公孫·公孫舍之及其大夫·門子, 皆從鄭伯. 晉士莊子爲載書: 自今日旣盟之後鄭國而不唯命是聽而或有異志者有如此盟!公子騑趨進曰: 天禍鄭國使介居二大國之間大國不加德音而亂以要之使其鬼神不獲歆其禋祀其民人不獲享其土利夫婦辛苦墊隘無所底告. 自今日旣盟之後鄭國而不唯有禮與彊可以庇民者是從而敢有異志者亦如之!荀偃: 改載書!公孫舍之: 昭大神要言焉. 若可改也大國亦可叛也.知武子獻子: 我實不德而要人以盟豈禮也哉? 非禮, 何以主盟? 姑盟而退修德·息師而來終必獲, 何必今日? 我之不德民將棄我豈唯? 若能休和遠人將至何恃於?乃盟而還.



주석

公會晉侯·宋公·衛侯·曹伯·莒子··滕子·薛伯·杞伯··齊世子光. 十有二月己亥: 두예의 주석엔 “『좌전』에서 ‘11월 기해일’이라고 썼는데 장력으로 따져보면 12월에는 기해일이 없다. 『춘추』의 기록이 오류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해일은 11 10일이다.

同盟于: 희는 『좌전·성공17년』에 나오는 희동戲童이다. 희동산은 현 하남성 등봉현登封縣 숭산嵩山 북쪽에 있다.

楚子: 주석 없음.


춘추시대 지도 '희'


冬十月諸侯伐: 이해 6월 정나라가 초나라를 예방했던 사실이 『좌전·양공22년』에 보인다. 진나라가 정나라를 정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庚午: 경오일은 11일이다.

季武子·齊崔杼·宋皇荀罃·門于: 노나라, 제나라, 송나라가 진나라의 중군의 뒤를 따랐다. 의 음은 전이다. 전문은 정나라의 성문 이름이고 고사기의 『지명고략』은 동문이라 말한다.

衛北宮括··荀偃·韓起門于師之梁: 위와 조 그리고 주나라의 군사는 진의 상군의 뒤를 따랐다. 『지명고략』에 따르면 사지량은 서문이다. 사지량은 『좌전·양공30년』과 『좌전·소공7년』의 기사에도 보인다.

··欒黶·士魴門于北門: 등나라와 설나라는 진의 하군을 따라 북문을 공격했다.

·人從趙武·魏絳斬行栗: ‘『춘추』에선 소주로 쓴다. 『좌전』은 경문의 거나라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는데 까닭은 알 수 없다. 조무와 위강은 신군의 장수와 보좌이다. 행률行栗은 길 양쪽의 베어내야 할 밤나무들이다. 『시·정풍·동문지선東門之』의 “동문의 밤나무(東門之栗)”에 대해 모『전』역시 도로 변의 밤나무라고 설명한다. 당시 정나라는 밤나무를 심기를 좋아한 것 같다. 은 베어내다. 그 이유는 길은 내기 위해 혹은 이것저것 만들기 위해서였다.

甲戌: 갑술일은 15.

師于: 의 음은 범이다. 동범수이다. 『좌전·희공30년』을 참조. 현 하남성 중모현中牟縣 서남쪽에 있다.

令於諸侯曰: 修器備: 공수를 위한 병장기틀 통틀어 기비器備라고 한다.

盛餱糧: 의 음은 성이다. 후량은 말린 식량.

歸老幼: 노약자와 어린 사람은 작전에 쓸 수 없기 때문에 돌려보냈다.

居疾于虎牢: 병든 병사들을 호뢰에 머물게 했다. 호뢰는 곧 북제이다. 『좌전·은공5년』을 참조.


춘추시대 지도. '호뢰虎牢'


肆眚, .: 는 용서(), 은 과오. 『상서·순전』의 “眚災肆赦”는 고의가 아닌 실수는 사면한다는 뜻이다.

人恐乃行成: 화친을 구한 것.

中行獻子: 遂圍之: 앞에서 정나라를 포위할 것을 명령했다. 순언荀偃은 결국 정나라를 포위하려 했다.

以待人之救也而與之戰: (연합군이) 초나라와 전투를 치르다.

不然, 無成.: 반드시 초나라를 패배시켜야 정나라가 진나라에 복종할 것.

知武子: 지무자는 중군의 장수 지앵이다.

▣"許之盟而還師以敝: 정나라와 결맹한다면 초나라는 필시 정나라를 칠 것이고 그러면 초나라 군사가 피로해진다.

吾三分四軍: 진나라에는 중군, 상군, 하군, 신군의 네 개 군단이 있다. 이를 세 부대로 나누어 돌아가며 작전을 편다.

與諸侯之銳: 진나라는 각국의 전투력과 강대한 군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한다.

以逆來者: 역은 적을 맞아 공격함. 초나라 군사를 말한다.

於我未病: 우리 군대를 셋으로 나누기 때문에 작전할 때 돌아가며 2개 부대는 쉴 수 있다.

不能矣: 초나라 군사는 쉴 수 없으므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猶愈於戰: 이 전술을 쓴다면 모두 정나라 성을 포위하는 것보다 초나라가 오기를 기다려 결전하는 것이 더 좋다.

暴骨以逞: 결전엔 사망자가 뒤따른다. 그래서 폭골이라 말했는데 폭은 현재의 폭 같고 죽은 이의 뼈가 사방에 드러남이다. 후련한다(快意).

不可以爭: 전쟁의 승리는 다만 힘써 싸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략에 달려 있다는 뜻.

大勞未艾: 는 휴식. 이제 큰 힘을 소모해야 하므로 지금은 힘을 축적해 놓는 것이 좋다는 의미.

君子勞心小人勞力: 이 말은 「노어하」와 『맹자·등문공상』에서도 “어떤 이는 머리를 쓰고 어떤 이는 힘을 쓴다(或勞心或勞力)”고 말한다.

先王之制也.: 「노어하」는 “선왕의 가르침으로 쓴다.

諸侯皆不欲戰乃許. 十一月己亥: 기해일은 11 10. 『춘추』의 주석을 참조.

同盟于: 『춘추』의 주석 참조.

服也: 주석 없음.

將盟六卿, 公子騑: 자는 자사子駟이다.

公子發: 자는 자국子國이다.

公子嘉: 자는 자공子孔이다.

公孫輒: 자는 자이子耳이다.

公孫: 자는 자교이다.

公孫舍之: 자는 자전子展이다.

及其大夫·門子: 문자는 경의 적자를 말한다.

皆從鄭伯. 晉士莊子爲載書: 사장자士莊子는 사약이다. 재서載書는 재, 한 글자로 써도 통한다. 『주례·추관·사맹司盟: “재는 맹세문이다.” 희생을 잡아 땅 속에 묻고 희생의 위에 맹세문을 놓은 후 땅을 덮는다. 희생을 쓰지 않는 경우에도 재서라고 말한다. 『좌전·정공13년』의 “맹세문을 황하에 넣었다.”고 말한 것으로 입증할 수 있다.

: 自今日旣盟之後鄭國而不唯命是聽: “이”는 “여”와 같고 만약의 뜻.

而或有異志者有如此盟!公子騑趨進曰: 天禍鄭國使介居二大國之間: 는 양국의 사이나 경계의 뜻.

大國不加德音而亂以要之: 은 병란. 는 약속, 맹세문을 가리킨다.

使其鬼神不獲歆其禋祀: 『설문』: “흠은 귀신이 곡기를 흠향함이다(, 鬼食氣也).” 인의 음은 인이고 『설문』은 “정결하게 드리는 제사(潔祀也)”라고 풀이한다.

其民人不獲享其土利夫婦辛苦墊隘: 점애墊隘 위돈委頓 유사하고 굶주림과 병약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좌전·성공6년』에도 보인다.

無所底告: 음은 지이고. 지고는 『상서·반경』의 “그대들이 와서 알리다(凡爾衆其惟致告)”와 같다.

自今日旣盟之後鄭國而不唯有禮與彊可以庇民者是從而敢有異志者亦如之!: 역여는 이 맹약을 가리킨다.

荀偃: 改載書!: 자사의 맹세의 말을 고치려 한 것. 사지의 말에 근거하면, 진나라는 자사의 말에 반대했다.

公孫舍之: 昭大神要言焉: “소”는 “조”와 같다. 『석명』은 “조는 희 같다. 이것으로써 그것을 밝게 비추면, 밝아지고 그 연유된 바를 알게 된다.”고 설명한다. 『주례·사맹』에 “북쪽을 향해 명신에게 분명하게 고하다(北面詔明神)”라는 설명이 있다. 장병린의 『좌전독』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요는 평성으로 약속이다. 즉 맹약을 말한다.

若可改也大國亦可叛也.知武子獻子: 我實不德而要人以盟: 요는 요협要挾, 협박하다.

豈禮也哉? 非禮, 何以主盟? 姑盟而退修德·息師而來: 식사는 군사들에게 휴식을 주는 것.

終必獲, 何必今日? 我之不德: 이는 가설구이다. 즉 우리가 만약 부덕하다면. 『문언어법』을 참조하라.

民將棄我豈唯? 若能休和遠人將至何恃於?乃盟而還: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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