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를 양보한 오나라 계찰 (춘추좌전.9.14.2.)

 

왕위를 양보한 오나라 계찰


오왕 제번諸樊이 탈상한 후 계찰季札을 군주로 옹립하려고 했다. 계찰이 사양하며 말했다. “조 선공이 타계했을 때, 제후들과 조나라의 사람들은 군주(성공)를 의롭게 보지 않고 자장子臧을 옹립하려고 했습니다. 자장은 나라를 떠나 끝내 군주가 되지 않고 군주를 도왔습니다. ( 8.15.1; 8.16.11.) 군자는 ‘자장은 절개를 지켰다.’고 평하였습니다. 군주께선 올바른 후계인데 누가 감히 군주를 범하겠습니까! 나라를 보유하는 것은 저의 절개가 아닙니다. 찰이 비록 부족하나 바라건대 자장의 일에 비추어 지조를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런데도 제번이 군주로 옹립하려 하자 계찰은 집을 떠나 농사를 지으니 이내 포기하였다.


원문

(9.14.2.) 吳子諸樊旣除喪將立季札. 季札辭曰: 曹宣公之卒也諸侯與人不義曹君將立子臧. 子臧去之遂弗爲也以成曹君. 君子曰: 能守節’,, 義嗣也誰敢奸君! 有國, 非吾節也. 雖不才願附於子臧以無失節.固立之棄其室而耕乃舍之.



주석

吳子諸樊旣除喪將立季札: 오나라 군주 승(수몽)은 양공 12년 가을 9월에 죽었다. 제번은 이미 양공 13년 정월에 즉위했고 탈상 후 계찰에게 양위하려고 했다. 춘추시대에는 삼년상을 지내기도 했는데 『좌전·소공15년』의 “왕께선 한 해에 삼년상을 지내야 할 상을 두 번 겪으면서도”라는 말로 입증할 수 있다. 제번은 수몽의 장자이다. 『공양전·양공29년』: “알·여제餘祭·이매夷昧 등이 계찰과 동복형제이다. 계자는 어렸지만 재능이 있어 형제들이 모두 그를 아껴 모두 그를 군주로 세우려고 했다. 알이 말했다: ‘이제 계자에게 나라를 주려 하는데 오히려 그가 거절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기 자식이나 형제에게 군주의 자리를 주지 말고 우리 형제가 번갈아 가며 군주의 자리를 이어 계자에까지 가도록 하자.’ 모두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여기에선 제번이 탈상 후 양위하려고 했던 일은 없다. 『사기·오세가』에선 이 일을 기술할 때, 계찰을 세우려 한 것은 본래 수몽의 뜻이었고 제번은 부친의 뜻을 이어 양위한 것으로 나오며, 『좌전』의 문장을 모두 채록하고 있다. 사마천은 『공양전』의 말을 합리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공양전』의 알 『좌전』의 알이고 두 글자는 고음에서 서로 통한다.

季札辭曰: 曹宣公之卒也諸侯與人不義曹君將立子臧: 조 선공은 노 성공 12년에 사망했다. 조군은 조 성공 부추를 말한다. 태자를 살해하고 즉위했다. 『좌전·성공13년』의 기사 참조.

子臧去之遂弗爲也以成曹君: 성공 15년과 16년의 『좌전』참조.

君子曰: 能守節: ‘능수절은 본래 자장의 말이다. 『좌전·성공15년』참조.

, 義嗣也: 제번은 죽은 수몽의 적장자이다. 당연히 그가 계승해야 하기 때문에 올바른 후사라고 말한 것.

誰敢奸君!: 범하다.

有國, 非吾節也: 자장이 군주의 자리를 사양할 때 “군주에 즉위하는 것은 나의 절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뜻과 같다.

雖不才願附於子臧以無失節.固立之棄其室而耕乃舍之: 두예: 『좌전』은 계찰의 겸양을 전하는 한편 오나라의 형제상전을 밝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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