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견과 빙문의 공납朝聘之數 (춘추좌전.9.8.1.)



양공 8년 봄, 양공이 진나라로 가서 조견하고, 또 조견과 빙문 때 수반되는 공납의 명을 들었다.


원문

(9.8.1.) 八年春公如, 且聽朝聘之數.



주석

八年春公如: 작년 12월 노 양공은 위읍에서 제후들과 회합했었는데 귀국했다는 언급은 없었다. 이번 진나라 예방은 위읍에서 바로 간 것이다.
且聽朝聘之數: 조빙지수朝聘之數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두예는 조·빙 때 수반되는 공물의 규모를 뜻한다고 했다. 반면 공영달의 『소』는 『좌전·소공3년』의 자대숙의 “진 문공과 양공의 시대에 제후는 3년에 한 번 예방하고, 5년에 한번 예방했다.”와 “진 양공 이후로 진나라의 덕이 쇠퇴하여 제후의 조빙이 다시 이전처럼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그리고 “도공이 이 때 명령을 내려 문공과 양공 때와 동일하게 했다”는 말을 근거로 본문의 조빙지수는 조빙의 회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 양공은 즉위 후 겨우 8년 동안 게다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 차례 예방했고, 12년에도 다시 예방한다. 5년 간격보다 훨씬 빈번한 예방이다. 이런 것을 봤을 때 두예의 해석이 비교적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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