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라의 친초파와 친진파의 대립 (춘추좌전.9.8.7.)


진나라를 버리고 초나라에 붙은 정나라 



겨울, 초나라의 자낭子囊(공자정)이 정나라를 정벌하고 채나라를 침략한 죄를 물었다.

자사子駟, 자국子國, 자이子耳 등은 초나라를 추종하려 했고 자공子孔, 자교, 자전子展 등은 진의 구원을 기다리려 했다. 자사가 말했다. 『주시周詩』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자면 대체 수명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가? 점치고 묻는 일이 많으면 서로 자주 다투다 얽히고 설킨다.’ 정책을 논하는 집안이 많으면 어기는 사람도 많아져 일은 더욱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백성이 위급하니 잠시 초나라에 복종하여 백성의 걱정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진군이 도착하면 다시 그들을 따르면 됩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갖추고 오는 나라를 따르는 것이 소국이 생존하는 길입니다. 희생과 예물을 구비해 진·초의 국경에서 기다리고, 강자를 기다려 백성을 보호해야 합니다. 외적이 해를 끼치지 않고 백성은 피폐해지지 않으니 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자전이 말했다.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길은 신의입니다. 소국으로서 신의가 없으면 그 날로 병란이 이르고 나라는 곧 망할 것입니다. 다섯 차례 회맹의 맹약을 이제와서 배반하면 설령 초나라가 우리를 구원한들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초나라는 친밀히 대해도 성과가 없으면 우리를 그들의 현으로 삼으려 할 것이니 초나라를 따를 수 없습니다. 진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 진의 군주는 현명하고, 진의 네 개 군단은 부족함이 없으며, 여덟 명의 경은 서로 화목하니 반드시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초군은 먼 길을 왔기 때문에 곧 군량이 바닥날 터이고 필경 신속히 물러날 것인데 왜 걱정하십니까? 저는 의지할 것은 신의 만한 것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견고하게 성을 지켜 초군을 지치게 하고 신의에 의지해 진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자사가 말했다. 『시』에 ‘모의하는 장부가 많으니 공을 이룰 수 없다. 조정에 말은 쏟아지나 그 책임은 누가 질까? 마치 달려가며 생각하는 저 사람처럼 길바닥에선 올바른 방법을 얻을 수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초나라를 따르기를 청합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이내 초나라와 강화를 체결하고 왕자 백병伯駢을 진나라로 보내 이 사실을 보고했다. “군주께서 폐읍에 명하셨습니다: ‘네 병거를 잘 수리하고 병사들에게 경계를 내려 국경을 어지럽히는 자를 토벌하라.’ 채나라가 불복하자 폐읍은 감히 편안히 있을 수 없어 전군을 동원하여 채나라를 토벌하고 사마 섭을 사로잡아 형구邢丘에서 군주께 바쳤습니다. 이제 초나라의 사신이 와서 우리를 책망합니다. ‘무슨 까닭으로 채나라에 군사를 일으켰는가?’ 초나라가 우리 교외의 보루를 불태우고 성곽을 침략했습니다. 폐읍의 무리들은 부부나 남녀 가리지 않고 쉴겨를도 없이 서로 구제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쓰러져 고꾸라지는데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그들의 부형이 아니면 자제들입니다. 모두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데 어찌 보호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국인들은 나라가 처한 곤궁을 알고 초와의 동맹을 수용했습니다. 저와 몇몇의 대신들로서는 이를 막을 수 없었고 또 감히 이 사실을 보고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무자知武子(순앵)는 행인 자원을 시켜 사신에게 회답하였다. “귀국 군주는 초나라의 명이 있자 과군께 단 한 명의 사신도 보내지 않은 채 바로 초나라와 화친을 맺었습니다. 이는 군주께서 원하신 일이니 어느 신하가 감히 군명을 어길 수 있었겠습니까? 과군은 제후들의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의 도성 아래에서 군주를 뵐 것입니다. 군주께선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원문

(9.8.7.) 楚子囊討其侵.

子駟·子國·子耳欲從子孔··子展欲待. 子駟: “『周詩有之曰: 人壽幾何? 兆云詢多職競作羅.謀之多族民之多違事滋無成. 民急矣姑從以紓吾民. 師至吾又從之. 敬共幣帛以待來者小國之道也. 犧牲玉帛待於二竟以待彊者而庇民焉. 寇不爲害民不罷病不亦可乎?

子展: 小所以事大信也. 小國無信兵亂日至亡無日矣. 五會之信今將背之救我將安用之? 親我無成鄙我是欲不可從也. 不如待. 君方明四軍無闕八卿和睦必不棄. 師遼遠糧食將盡必將速歸何患焉? 舍之聞之: 杖莫如信. 完守以老杖信以待不亦可乎?

子駟: “『: 謀夫孔多是用不集. 發言盈庭誰敢執其咎? 如匪行邁謀是用不得于道.請從也受其咎.

乃及使王子伯駢告于, : 君命敝邑: 修爾車賦儆而師徒以討亂略.人不從敝邑之人不敢寧處悉索敝賦以討于, 獲司馬獻于邢丘. 來討曰: 女何故稱兵于?焚我郊保馮陵我城郭. 敝邑之衆夫婦男女不遑以相救也. 翦焉傾覆無所控告. 民死亡者非其父兄卽其子弟. 夫人愁痛不知所庇. 民知窮困而受盟于. 孤也與其二三臣不能禁止不敢不告.

知武子使行人子員對之曰: 君有亦不使一(1)行李告于寡君而卽安于. 君之所欲也誰敢違君? 寡君將帥諸侯以見于城下. 唯君圖之.


(1) ”는 원래 “”로 쓰여있다. 여기서는 『석문』과 금택문고본, 송본 등의 판본과 전기의 『좌전찰기』에 근거하여 정정한다.



주석

楚子囊討其侵: 주석 없음.

子駟·子國·子耳欲從: 『좌전·양공22년』에 근거하면, 자사는 과거 정나라 군주를 모시고 진나라를 예방한 적이 있었는데 진의 군주가 자신들에게 무례하게 굴었기 때문에 초나라를 따르려고 했다.

子孔··子展欲待: 자공은 목공의 아들이다. 자교는 즉 공손채公孫이고 시호는 환자桓子이며 자유子游 아들이다.


정나라의 친초파와 친진파



子駟: “『周詩有之曰: 俟河之人壽幾何?: 황하는 고대부터 물이 혼탁했다. 『문선·사현부』에 대한 이선의 주석에서 『역전』을 인용하여, “황하는 천 년에 한번 물이 맑아진다”고 말한다. 이는 당연히 전설로서 믿을 바는 아니다. 본문은 인생은 짧아서 황하의 물이 깨끗해지길 기다릴 수 없다는 뜻이다.

兆云詢多職競作羅.: 이 시는 일시이다. 는 점복이다. 은 어중조사로서 뜻이 없다. 『이아·석고』에서 “”으로 풀이했다. 시 삼백편 중에서 “직경職競”을 사용한 예는 두 번이다. 『대아·상유』의 “職競用力”과 『소아·십월지교』의 “職競由人 그리고 이 일시까지 합치면 세 차례이다. ‘은 당 뜻으로서 『사전』에 자세하다. ‘은 어사인데, 다른 설명도 있다. 두 구절의 뜻은 점을 치는 일이 빈번하면 스스로를 얽는 그물을 만드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좌전·애공23년』의 “(국내의 여러 일들이) (계강자)를 번거롭게 하여 직접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고(使與有職競焉)”의 경 역시 이 뜻(번거롭게 하다)이다.

謀之多族: 공손의 아들에게 씨를 하사하여 씨족을 이루게 한다. 본문은 다만 조정의 경사 여럿과 의논하는 것을 말한다.

民之多違: 논의가 너무 많으면 따르지 않는 사람이 많다.

事滋無成: 는 더욱. 일은 더욱 성사되기 어렵다.

民急矣: 초나라 군사의 공격이 더욱 심해진다.

姑從以紓吾民: 는 완화의 뜻.

師至吾又從之. 敬共幣帛: 공은 공 같다.

以待來者小國之道也. 犧牲玉帛待於二竟: 경은 국경. 이경은 초나라및 진나라와 맞닿은 정나라의 국경이다.

以待彊者而庇民焉. 寇不爲害民不罷病: 오늘날 피 쓴다.

不亦可乎?: 주석 없음.

子展: 小所以事大信也. 小國無信兵亂日至亡無日矣. 五會之信: 두예: “양공 3년 계택, 5년 척과 성체, 7년의 위, 8년의 형구에서의 회합을 말한다.

今將背之救我將安用之? 親我無成鄙我是欲不可從也: 은 종. 우리가 다섯 번의 회합에서 한 약속을 배신하면 진나라가 반드시 우리를 정벌할 것인데 설사 초나라가 우리를 구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초나라가 우리를 친밀하게 대해도 끝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면 오히려 우리를 그들의 한 개 현으로 삼을 것이니 초나라를 따를 수 없다는 말. 왕념손의 설을 따른 해석이다.

不如待. 君方明四軍無闕: 사군은 진나라의 중군, 상군, 하군 그리고 신군 등의 네 군을 말한다. 무궐은 전차병과 보졸이 모두 완비되어 있다.

八卿和睦: 공영달의 『소』는 『좌전·양공9년』의 근거로 팔경은 순앵·사개·순언·한기·난염·사방·조무·위강 등 사군의 장수와 부장을 말한다고 설명.

必不棄. 師遼遠糧食將盡必將速歸何患焉? 舍之聞之: 사지는 자전의 이름이다.

杖莫如信: 믿고 의지할 것은 신의만 한 것이 없다.

完守以老: 은 견고함의 뜻. 견고하게 지켜 초나라 군사들을 피로하게 만들고 사기가 떨어뜨린다.

杖信以待: 진나라는 결코 정나라를 버리지 않을 것.

不亦可乎?: 주석 없음.

子駟: “『: 謀夫孔多是用不集: 공은 더욱, 은 성취의 뜻.

發言盈庭誰敢執其咎?: 조정에 발언하는 사람은 많지만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

如匪行邁謀, 是用不得于道.: 는 피. 행매는 동의사의 연용이다. 『시·왕풍·서리黍離』의行邁靡靡”로 입증할 수 있다. 도는 길의 뜻. 이 시는 『소아·소민』의 구절이다. 시구의 뜻은 마치 길을 달려가며 길에 있는 사람에게 묻고 생각하니 얻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請從也受其咎.: 자사는 본래는 진나라에 복종할 것을 주장했었던 사실이 『좌전·양공2년』에 보인다. 여기서 생각이 변해 초나라를 따르자고 한 것은 『좌전·양공22년』의 자산의 말에 근거하면 자사는 형구의 회합에서 받은 수모를 이때까지 치욕스럽게 여겨 진나라에 원한을 품었던 것이라고 한다.

乃及使王子伯駢告于: 『좌전·선공6년』에 왕자백료가 나오는데 역시 정나라의 대부이다. 혹 백병은 백료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는 없다.

: 君命敝邑: 修爾車賦: ‘거부가 한 단어로 쓰인 예는 이 곳뿐이다. 거부는 거승車乘 같다.

儆而師徒: 음과 뜻은 경 같다. 군사적 대비이다.

以討亂略.: 난략이 한 단어로 쓰인 예도 이곳뿐이다. 올바른 방법이 아니게 취하는 것을 략이라 한다. 란과 뜻이 유사하다.

人不從敝邑之人不敢寧處悉索敝賦: 실색悉索은 동의사의 연용이다. 뜻은 진이다. 우리의 군사 역량을 다했다.

以討于, 獲司馬獻于邢丘. 來討曰: 女何故稱兵于?: 칭은 일으킴.

焚我郊保: 는 오늘날 보로 쓴다. 흙을 쌓아 성을 쌓는 것은 근대의 토채와 비슷하다. 교보는 교외에 있는 작은성의 보루이다.

馮陵我城郭: 빙릉은 동의사이다. 침략과 같은 말.

敝邑之衆夫婦男女不遑以相救也: 부부는 결혼한 사람. 남녀는 아직 결혼하지 않는 사람과 혹 홀아비나 과부를 말한다. 뜻은 모든 사람. 불황계처는 원래 『시·사목』의 시구이다. 은 한가함. 잠시 쉼小跪(소궤)을 계라 한다. 옛 사람들은 앉을 때 자리를 땅에 깔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구의 뜻은 서로 구제하느랴 한가하게 앉아 있을 겨를이 없다. 상황이 급박함을 표시.

翦焉傾覆: 전언翦焉 상어狀語, 쓰러져서 깊이 침몰하는 모양. 장병린의 『좌전독』을 참고.

無所控告. 民死亡者非其父兄卽其子弟. 夫人愁痛: 두예: “부인은 모든 사람이다.” 왕인지의 『경전석사』: “부는 범 같고, 많음 뜻이다.

不知所庇. 民知窮困而受盟于. 孤也與其二三臣不能禁止不敢不告.: 주석 없음.

知武子使行人子員對之曰: 지무자는 중군의 장수 순앵이다.

君有: 두예: “토벌하겠다는 초나라의 명을 받고.

亦不使一行李告于寡君: ”는 본래 “”로 쓰여 있다. 여기서는 『석문』과 금택문고본, 송본 등의 판본과 전기의 『좌전잘기』에 근거하여 정정한다. 두예는 행이行李를 “행인行人”이라고 풀이했다.

而卽安于: 즉 사안에 대해 미리 알려주지 않고 바로 초나라에 굴복한 것.

君之所欲也誰敢違君? 寡君將帥諸侯以見于城下. 唯君圖之.: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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