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의 서장庶長 포鮑와 무武가 진晉나라를 공격하다 (춘추좌전.9.11.6.)


나라의 서장庶長 포와 무가 진나라를 공격하다



나라의 서장庶長와 서장 무가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여 정나라를 구원했다. 포가 먼저 진 땅으로 쳐들어갔고, 의 사방士魴은 이를 방어했는데 적군이 수가 적다고 여겨 대비하지 않았다. 임오일(5), 무가 보씨輔氏(섬서성 대려현荔縣 동쪽 20)에서 황하를 건너 포교와 함께 진군을 공격했다. 기축일(12), 양군이 역에서 교전했고 진군이 패배했다. 적을 가볍게 봤기 때문이다.


원문

(9.11.6.) 庶長·庶長帥師伐以救. 先入士魴禦之師而弗設備. 壬午濟自輔氏鮑交. 己丑·戰于師敗績故也.



주석

庶長·庶長帥師伐以救: 서장庶長은 진나라의 관작 명이다. 상앙이 진나라의 관작을 제정할 때, 서장을 4등급으로 나누고 제10작을 서장, 11작을 우서장, 17작을 사거서장, 18작을 대서장으로 규정했다. 『속한지·백관지』5에서 유소의 『작지』를 인용: “좌서장으로부터 위로 대서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대부이고 군의 장수였다.” 『사기·진본기』에는 효공이 상앙을 등용하기 전까지 빈번하게 서장이란 직명이 나온다. 진 영공 당시는 춘추 초기인데 이때도 역시 대서장이 있었다. 진 효공 3년 처음 상앙을 접견하고 그를 좌서장에 임명했다. 즉 서장과 좌서장의 관직은 그 유래가 매우 깊다. 상앙은 이를 잇고 대략 변경한 것이다.

先入士魴禦之: 이때 진 도공은 아직 귀국하기 전이다. 사방은 본국에 머물면서 수비 태세를 갖췄다.

師而弗設備: 나라 군사의 수가 적다고 생각한 것.

壬午: 임오일은 5일이다.

濟自輔氏: 보씨는 현 섬서성 대려현荔縣 동쪽 20리 못 미치는 곳. 『좌전·선공15년』의 주석에 상세하다.


춘추시대-보씨輔氏


鮑交. 己丑: 기축일은 12일이다.

·戰于: 「진세가」『색은』에서 『석례』를 인용하여 역 황하의 북쪽에 있고, 정확한 지명은 알 수 없다고 하는데 맞다. 『방여기요』는 임동현臨潼縣 북쪽 30리 떨어진 곳이라고 하나 신뢰할 수 없다.

師敗績故也: 이진易秦은 진나라 군사를 가볍게 본 것. 「년표」와 「진본기」는 모두 진나라가 진의 군사를 역에서 물리쳤다고 한다. 오직 「진세가」만이 “진이 우리 역 땅을 빼앗았다(取我)”고 적고 있다. 양옥승의 『지의』는 “내가 보건대 ‘’자는 ‘’자로 써야 옳은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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