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와 최종적으로 결속한 정나라, 소어蕭魚 회합 (춘추좌전.9.11.5)

 

진나라에 완전히 결속한 정나라, 소어(蕭魚) 회합



9, 제후들(양공, 진 도공, 송 평공, 위 헌공, 조 성공, 제 세자광, 거나라, 주나라, 등나라, 설나라, 기 효공, 그리고 소주)이 군을 총동원하여 다시 정나라를 정벌했다. 정나라는 양소良霄와 태재 석착을 초나라로 파견하여 진나라에 복종할 것임을 보고하고, 말하였다. “과군은 사직이 위태롭기 때문에 군주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예물을 갖추어 진나라의 분노를 진정시키거나 혹은 무위를 떨쳐 저들을 위협해 주십시오. 그것이 과군이 소망하는 바입니다.” 초나라는 두 사람을 억류했다. 『춘추』에 “행인”으로 쓴 것은 그들이 사신의 신분임을 말한 것이다.


제후의 군대가 정나라 도성의 동문에서 군대를 사열했다. 정나라는 왕자백병王子伯駢을 보내 강화를 요청했다. 갑술일(26), 진의 조무가 도성으로 들어가 정 간공과 결맹했다. 겨울 10월 정해일(9), 정나라의 자전이 도성 밖으로 나가 진 도공과 결맹했다. 12월 무인일(1), 소어蕭魚에서 회합했다. 경진일(3), 도공은 정나라의 포로를 사면하고 모두 예를 갖춰 돌려보냈다. 척후를 불러들이고 노략질을 금지하였다. 도공이 숙힐을 보내 제후들에게 상기한 명을 통보했다. 양공은 장손흘을 통해 회답했다. “무릇 우리 동맹국은 소국이 죄를 지으면 대국이 그 죄를 다스리고, 작은 소득이라도 얻으면 용서하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과군은 군주의 명을 잘 받들겠습니다.


정나라는 도공에게 악사 회, , 등과 광거廣車, 돈거를 짝지어 15대씩 그리고 갑옷과 무장을 갖춘 병거 100대를 뇌물로 바쳤다. 종 두 틀과 박, 편경 그리고 여악사 16명을 바쳤다.


도공이 악사와 악기의 절반을 위강에게 포상하며 말하였다. “그대가 융적과는 화친하고 중원을 복종시키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주었다. 그후 팔년 간 아홉 번 제후를 규합했으니 마치 음악이 화음을 이룬 것처럼 어느 것 하나 어그러진 일이 없었다. 이에 그대와 함께 음악을 즐기고자 한다.( 9.4.7.)


위강이 사양하며 아뢰었다. “무릇 융적과 화친한 일은 나라의 복이었습니다. 팔년 간 아홉 번 제후를 규합했지만 제후들이 배반하지 않은 것은 군주의 위엄과 여러 신하들의 노고 때문이니 신이 그 일에 무슨 공적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신은 군주께서 음악을 즐기시되 그 뒷일도 잘 헤아려 주시길 소원합니다. 『시』는 말합니다. ‘화평한 군자여 천자의 방국들을 어루만지네. 화평한 군자여 복록을 백성과 함께 하네. 이웃을 잘 다스리니 저들이 백성을 인솔하여 와서 순종하네.’ 무릇 음악으로 덕을 편안하게 하고, 의로써 덕에 처하며, 예로써 덕을 실천하고, 믿음으로 덕을 지키고, 인으로써 덕을 격려한 후에 가히 방국을 어루만지고 복록을 함께 하며 먼 나라도 오게할 수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함께 즐긴다라는 것입니다. 『서』는 말합니다. ‘편안한 때에 위험을 생각하라.’ 염려가 있으면 대비가 있고,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으니 감히 신은 이 말로써 간언드립니다.


도공이 말하였다. “그대의 가르침을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그대가 아니었다면 과인은 융적을 대처하지 못하여 황하를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다. 무릇 포상은 나라의 법도로써 맹부에 기록되니 없앨 수 없다. 그대는 사양치 말고 상을 받으라!” 이에 위강은 처음으로 종과 경으로 구성된 음악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법도에 맞는 일이다.


원문

(9.11.5.) 九月諸侯悉師以復伐人使良霄·大宰告將服于: 孤以社稷之故不能懷君. 君若能以玉帛綏不然則武震以攝威之孤之願也.人執之. 書曰行人”,言使人也.

諸侯之師觀兵于東門. 人使王子伯駢行成. 甲戌晉趙武入盟鄭伯. 冬十月丁亥鄭子展出盟晉侯. 十二月戊寅會于蕭魚. 庚辰囚皆禮而歸之; 納斥候; 禁侵掠. 晉侯使告于諸侯. 公使臧孫紇對曰: 凡我同盟小國有罪大國致討苟有以藉手鮮不赦宥寡君聞命矣.

人賂晉侯·師觸·師蠲; 廣車·車淳十五乘甲兵備凡兵車百乘; 歌鐘二肆及其鎛·女樂二八.

晉侯以樂之半賜魏絳: 寡人和諸戎狄以正諸華八年之中九合諸侯如樂之和無所不諧請與子樂之.辭曰: 夫和戎狄國之福也八年之中九合諸侯諸侯無慝君之靈也二三子之勞也臣何力之有焉? 抑臣願君安其樂而思其終也. : 樂只君子殿天子之邦. 樂只君子福祿攸同. 便蕃左右亦是帥從.夫樂以安德義以處之禮以行之信以守之仁以厲之而後可以殿邦國·同福祿·來遠人所謂樂也. : 居安思危.思則有備有備無患. 敢以此規.公曰: 子之敢不承命! 抑微子寡人無以待戎不能濟. 夫賞國之典也藏在盟府不可廢也. 子其受之!魏絳於是乎始有金石之樂禮也.


주석

九月諸侯悉師以復伐: 맹세의 “호오를 하나로 한다”는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

人使良霄·大宰: 음은 착 비슷하다. 태재는 비록 경의 신분이나 어떤 때는 국정을 담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산경散卿 되기도 한다. 정나라의 육경은 모두 목공의 후손이기 때문에 칠목七穆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때 자공은 사도로서 국정을, 양소는 정사正使, 석착은 태재였지만 부사副使 담당했다.

告將服于: 孤以社稷之故不能懷君. 君若能以玉帛綏: 玉帛綏”에서 수는 편안하게 하다. 진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음.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좌전·희공5년』의 “以德綏諸侯”의 주석을 참조. 이 문구는 완결되지 못했는데 본래의 뜻은 ‘우리가 가장 원하는 바는’이 된다. 그러나 정나라는 이것이 초 공왕의 분노를 불러올까 하여 말하지 않은 것이다.

不然則武震以攝威之: 『좌전·문공6년』의 주석: “진 뜻이다.” 섭(두렵게 하다)과 같고, 음은 철이다. 왕인지의 『술문』: “널리 두려움을 섭이라 하는데,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 역시 섭이라 한다.” 섭위란 동의사의 연용이다.

孤之願也.人執之: 양소와 석착 두 사람을 잡아 억류하다.

書曰行人”,言使人也: 행인에 대해선 『좌전·선공12년』의 주석 참조.

諸侯之師觀兵于鄭東門. 人使王子伯駢行成. 甲戌: 갑술일은 26.

晉趙武入盟鄭伯. 冬十月丁亥: 정해일은 9.

鄭子展出盟晉侯. 十二月戊寅: 무인일은 초하루.

會于蕭魚: 소어蕭魚 강영의 『고실』에 따르면 허창시에 해당한다.


춘추시대-정나라-소어蕭魚


庚辰: 경진일은 3일이다.

囚皆禮而歸之; 納斥候: 척후는 정찰병과 순라병이다. 납은 불러들이다. 두예: “서로 대비하지 않았다.

禁侵掠: 이전에는 정나라를 침략하고 약탈을 했음을 알 수 있다.

晉侯使告于諸侯: 음은 석이다(우리 자전에는 석의 음가가 없기 때문에 힐로 쓴다. 옮긴이). 숙힐은 양설힐로서 자는 숙향인데 숙예라고도 한다. 『예기·단궁』과 『일주서·태자진해』, 『당서·재상세계표』1의 하에 보인다. 전해지는 이기에 숙향부기叔向父旣 있는데, 오개생의 『금문록』권3에선 “이 기는 혹 진나라의 숙향의 것일 수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이외에 숙향부가 만든 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나라의 포로를 방면하고, 척후를 불러들이고, 침략과 약탈을 금지했다.

公使臧孫紇對曰: 凡我同盟小國有罪大國致討苟有以藉手: 복건의 주석에 따르면, 얻은 것이 적을 경우 모두 자수藉手라고 말할 수 있다. 『좌전·성공2년』의 “작은 구실이라도 만들어 주시어 과군께 복명할 수 있다면, 이는 군주의 은혜입니다(若苟有以藉口而復於寡君)” 역시 적은 소득(구실)이라도 있으면 우리 군주에게 보답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鮮不赦宥寡君聞命矣.: 주석 없음.

人賂晉侯·師觸·師蠲: 의 음은 휴, 음은 연이다. 세 사람은 모두 악사이다. 고대 악사는 각기 한 가지씩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논어·미자』에 나오는 고방숙과 반고무 그리고 격성양 등으로 입증할 수 있다. 본문의 인물들은 복건에 따르면 종과 박 그리고 경을 전문으로 하는 악사들인데 아랫글에 근거한 말일 수도 있다.

廣車·車淳十五乘: 광거廣車에 대해 정현은 횡진橫陳하는 수레라고 말하는데, 선공 12년 초나라의 우광과 좌광의 광과 함께 공격하는 전차라고 말한다. 의 음은 둔이다. 돈거에 대해 복건은 수비용 전차라고 말한다. 같고 고대에 투호례와 사례에서 홀수 하고 짝수이라 한다. 여기 순 역시 짝수의 뜻이다. 즉 광거와 돈거가 짝을 이뤄 일순이 되고 각 15, 합계 30승이다.

甲兵備凡兵車百乘: 두예: “다른 병거와 광과 돈을 합쳐 모두 100승이다.

歌鐘二肆: 이 종은 내려뜨린 열이 한 쌍을 이루는 종이다. 『주례·소서』에 따르면, “종과 경을 매달 때 절반은 도, 전체는 사라 한다.” 정현의 주석: 2 x 8 16매가 한 개의 가로막에 있는 것을 도라 하는데, 종 일도와 경 일도를 합쳐 사라 한다.” 그러나 본문에선 다만 종만을 언급하고 아래에 다시 “박과 경”을 말하고 있다. 여기 이사二肆에는 경이 걸려 있지 않다. 『여□종명』: “대종 팔사, 기조 사도(大鐘八肆其四堵)” 당란은 이 문구에 근거하여 『주례·소서』의 글이 본래 “전체를 도, 절반은 사라고 한다”라고 써야 옳은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연경학보』14기 「고악기소기」에 상세한 설명이 있다. 출토된 편종을 살펴보면, 사와 도의 수는 모두 일정하지 않다. 용경의 『이기통고·악기장』에서는 극종, 형인종, 자장종 등은 모두 양종兩鐘을 합하여 전문全文을 이루고 있다. 양종이 일사一肆인 것이다. 괵숙 편종은 사종을 합하여 전문을 이루므로 사종이 일사이다. 편종은 첫째 조합에서 칠종이 전문을 이룬다. 즉 칠종이 일사이다 등등의 설명을 하고 있다. 이는 명문의 길고 짧음으로 사를 삼은 것인데 역시 그의 추측으로 생각된다. 『문물』74 12기 등소금의 『사천배릉에서 새로 출토된 착금편종』에선 신양 장대관에서 출토된 편종과 낙양에서 출토된 응강편종은 모두 14매가 한 열을 이룬다. 그러나 1978 5,6월에 호북성 수현의 성관에서 서북쪽으로 5리 떨어진 뇌고돈에서 발굴한 전국시대 초기 묘에서 동으로 만든 편종 64건이 발견되었는데, 뉴종 19, 용종甬鐘 45건을 포함하고 있다. 3개 층으로 나뉘어 종걸이틀에 걸려 있었다. 가장 큰 용종이 높이가 154.4센티미터이고, 무게는 203.6킬로그램인데 그 모양과 무게 등은 모두 과거에 출토된 것을 상회하였다. 종걸이틀은 동과 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었고 상중하, 세 개 층으로 구분된다. 곱자형태로 교차하여 묘의 중실中室을 끼고 관의 서쪽곽과 남쪽곽에 방치되어 있었다. 서쪽 틀의 길이는 7.48미터이고 높이는 2.65미터이다. 남쪽틀의 길이는 3.3미터, 높이는 2.73미터이다. 나무틀에는 채색한 꽃무늬로 채워져 있고, 양쪽 끝에는 모두 덮개가 있는데 양각 및 음각처리된 청동 덮개로서 장식 및 보다 견고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편종에는 전서체의 명문이 금박이로 새겨져 있는데 총 2,800여자에 달한다. 주로 음악에 관련된 글이었다. 뉴종의 명문은 율명과 계명이고 용종의 정면에는 수와 고의 부위(즉 종의 입에서 상부와 정중앙 그리고 양쪽 끝 부분)의 명문은 계명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궁상각치우 등이다. 뒷쪽 각 부위의 명문은 이어 읽을 수 있는데 증나라(이 편종은 증나라 군주 을이 제작한 것이다)와 초나라, 주나라, 제나라, 진나라 등의 율명과 계명이 상호 대응 관계로 쓰여 있다. 음을 측정하고 명문의 연구를 결합하여 초보적인 결과를 표명하였는데 뉴종은 조를 정하는데 쓰이고, 용종은 때려서 음계를 발출하고, 이를 조화시켜 악곡을 이룬다. 하층의 용종은 연주 중에 음을 강조하거나 화음을 이루는 작용을 한다. 출토된 편종과 종가 중에 이처럼 완전한 것은 아직까지 없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78 9 3일 광명일보 제3판을 참고하라. 실물로서 증명해 보면, 음조와 음계가 완비되어 연주를 해서 악곡을 이룰 수 있는 것을 비로소 일사一肆라고 말하는 것이다. 송진양의 『악서』에선 고대 편종의 대가는 24, 중가는 16, 소가는 14라고 설명하는데, 비슷한 수치를 얻었다. 정현 등의 주석은 출토된 실물로 증명하면 모두 잘 들어맞지 않는다.

及其鎛·: 의 음은 박이다. 『국어·주어하』의 영주구의 말에 따르면, 박은 작은 종을 가리킨다. 하지만 정현은 『주례·춘관·박사鎛師』의 『서관序官』과 『의례·대사의大射儀』의 주석에서 박을 큰 종이라고 설명했다. 본문의 경우 노래를 부를 때 반주하는 종이다.

女樂二八: 여악은 춤과 노래를 하는 여인이다. 고대 악무는 8인이 한 열을 이루는데 이것을 ‘일’이라 한다. 이팔은 이일二佾 말한다. 「진어7」에선 정 간공이 여공첩을 서른 명, 여악사 16(이팔) 그리고 보배로운 박과 노거 30승을 바쳤다고 하여 『좌전』과는 좀 다르다.

晉侯以樂之半賜魏絳: 「진어7: “도공이 위강에게 여악사 8명과 종 일사一肆 하사했다.

: 寡人和諸戎狄以正諸華八年之中: 양공 4년 융과 강화를 맺은 후로 8년이다.

九合諸侯: 양공 5년 척에서 회합, 성체에서 회합하여 진을 구원하고; 7년 위에서 회합했고; 8년 형구에서 회합했으며; 9년 희에서 회합; 10년 사에서 회합; 정나라의 호뢰에서 회합; 11년 박성의 북쪽에서 결맹; 다시 소어에서 회합했다. 「진어7: 8년간 제후와 모두 7번 회합했다.” 공영달의 『소』는 공광의 설을 인용: “진을 구원했던 것과 정나라 호뢰를 수비했던 일을 제외하고 7차례가 된다.” 유사배의 『고서의의거례보』에선 “9”는 허수라고 말했지만 옳지 않다.

如樂之和無所不諧: (위강의 계책이) 마치 음악이 화음을 이룬 것 같다.

請與子樂之.: 음은 낙 같고 즐김이다.

辭曰: 夫和戎狄國之福也八年之中九合諸侯諸侯無慝: 제후 모두 순종했다는 뜻.

君之靈也: 영은 위엄.

二三子之勞也: 이삼자는 중군의 장수 이하 모두.

臣何力之有焉? 抑臣願君安其樂而思其終也: 은 연사로서 어기의 전환. 당시 도공이 다시 패권을 안정시켰는데 위강은 그가 혹 교만해질까 걱정하여 이런 조언을 한 것.

▣『: 樂只君子殿天子之邦. 樂只君子福祿攸同: 어중조사. . 殿 어루만짐이다.

便蕃左右, 亦是帥從.: 『소아·채숙采菽』의 시구. 『모시』는 “만록萬祿”을 “만복萬福”으로, “편번便蕃”을 “평평平平”으로 쓴다. 『한시』에선 “편편便便”으로 쓴다. 모두 다스림의 뜻이다. 좌우는 다음 글과 정현의 『전』에 근거하면 이웃 작은 나라들을 말한다. 수종帥從은 종수의 도치.

夫樂以安德: 악은 음악.

義以處之: 두예: “의로움으로 그 지위에 처한다(處位以義).

禮以行之: 두예: (예에 맞게) 명령을 실행하다.

信以守之: 두예: (신의로) 행실을 단속한다.

仁以厲之: 같고 격려함. 두예: “려는 풍속이다.” 두예의 해석을 채용할 수 있고, 또 “”자를 모두 “덕”의 대명사로 볼 수도 있다.

而後可以殿邦國·同福祿·來遠人: 자신이 인용한 시구의 뜻을 차츰차츰 밝혀가고 있다. 원인遠人 곧 앞의 “이웃 작은 나라(左右)”와 같다.

所謂樂也: 음은 낙이다. 도공이 앞서 “그대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리라”에 대한 응답.

▣『: 居安思危.: 두예: “이 『서』는 일서이다.” 왕명성의 『상서후안』은 위고문「주관」의 “총애를 입을 때, 그것을 잃었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居寵思危).”라는 말이 있는데 본문에서 “총”자를 “안”자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일주서·정전편』에선 또 “편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고, 일을 시작할 때 마지막을 생각하며, 낌새를 보고 대비할 일을 생각하고, 먼 일에서가까운 일을 생각한다. 대비하지 않으면 엄중한 경계를 어기지 않음이 없다.” 혜사기의 『보주』에서 이를 인용하고 있다. 양리승의 『좌통보석』: “아래 글에서 ‘염려함이 있으면 대비가 있고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체로 「주서」의 뜻을 포괄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정전」이 어느 시기에 작성되었는지 단정짓기는 어렵다. 『좌전』의 작자 역시 그 내용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으므로 양리승의 주장은 참고 정도로 그쳐야 한다. 『전국책·초책사』에서 우경이 “소신이 『춘추』에서 보건대,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여 대비하고 위기일 때는 안정된 후를 염려해야 한다고 합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역시 『춘추』를 언급하지 『일주서』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思則有備有備無患. 敢以此規.: 바로잡음規正·올바른 말로 조언함規諫·올바른 것으로 권면함規勸

公曰: 子之敢不承命! 抑微子寡人無以待戎不能濟. 夫賞國之典也藏在盟府: 희공5년과 26년의 『좌전』주석에 상세하다.

不可廢也. 子其受之!: 기는 명령부사.

魏絳於是乎始有金石之樂禮也: “시유始有”라는 말로 추측해 보면, 대부의 제사의 음악은 필경 그가 공적이 있어서 하사 받은 것이다. 완원의 『적고재종정관식積古齋鐘鼎欵識』에 초양신여의종楚良臣余義鐘이 실려 있다. 그 명문 뒷부분에 “좋은 청동 박려를 얻어 그것을 녹여서 종을 만들어 선조들을 추모하고 우리 부형께 음악을 바친다.”라는 구절이 있다. 완원은 이 종에 대해서 “이 종은 아가 만들어서 그의 조상 여의余義의 제사에 사용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역시 사대부의 제사에 음악이 쓰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상세한 설명은 왕소란의 『경설』권4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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