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居敬 - 유림의 나쁜 '경'
중궁이 자상백자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번거롭게 하지 않으니 쓸만하다.” 중궁이 말했다. “평소 신중하고 일처리는 소략하게 하여 아랫사람을 다스린다면 참으로 괜찮지마는 평소 신중하지 않고 일처리까지 소략하다면 아마도 지나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옹의 말이 옳다.”
한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나름의 결과를 머리속에 잘 정리해 놓으면 의견을 전할 때 간결하고 쉽게 잘 전할 수 있다. 반대로
고민한 적도 없는 안건을 굳이 - 안해도 되는데 - 설명할라치면
설명도 번거롭고 설득력도 없다. 낙하산 타고 자신의 경력과 관련도 없는 공기업의 윗자리에 앉게 되면
애초 아는 것이 없으니 심각히 고민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아랫사람의 일은 번거롭고 효율도 떨어진다.
‘경敬’에 대하여
주희는
경敬을 똑부러지게 설명한다. 경은
‘다만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두려워하라.’ 중국 사상사에서 ‘경’이 도드라지게 등장한 것은 주공에 의해서다. 주공은 전설 상의 인물이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인물이며 그의 말과 행적은 동시대 청동기의 명문에서도, 또 『상서』중에서도 신뢰할만한
서주 초기의 ‘고誥’편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고편들은 대부분 주공이 형제들에게, 또
함께 주나라를 일군 공신들에게 행한 연설인데, 그의 연설을 포고문의 형태로 반포했기 때문에 ‘고’라고 부른다.
그의 포고문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어휘 중의 하나가 ‘경’이다. 뜻은 역시 ‘두려워하다.’ 무왕과
주공 등이 상나라를 전복하고 새로이 천하의 주인이 된 것은 ‘하늘의 명’이 상에게서 자신들에게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하늘이 상나라를 내친
것은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간에서 두려워하는 대상의 전이도 함께 발생한다. 상나라의
왕들이 두려워한 대상은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하늘이다. 그들은 이를 ‘제帝’라고 불렀다. 상의 왕들은 만사를 제에게 묻고 그 결과에 순종했다. 그러나 주공에게
하늘은 ‘천무친天無親’,
즉 특별히 어여삐 여기는 대상이 없는 차갑고 냉정하며 증거로만 판단하는 존재로 정상참작이란 것이 없다. 주공은 눈을 하늘에서 인간으로 돌리고 지배자가 두려워할 대상은 바로 ‘민’이라고 확신한다. 중국사상사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민을 두려워하고 민의 마음을 얻는 것에 주력하라, 이는 주공이 이해한
하나라, 상나라의 흥성과 쇠망의 핵심 요소였다.
주공의
시대로부터 대략 2천년이 지난 시기의 주희도 유난히 ‘경’을 강조했다. 주공이나 공자와 달랐던 점은 그는 ‘경’으로 소승을 지향했고 선배들은 대승을 꿈꿨다는 것이다. 주희는 ‘경’, ‘신독’, 그리고 ‘리’를 중시하여, 평범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세상에 함께 참여하고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것보다는 도학을 공부하는
무리들을 거느리며 붕당을 짓고 세력을 형성하여 재야에서 영향력을 자랑하는, 이후 동아시아의 질나쁜 유림들이
악용하는 선례를 만들어 놓았다. 모든 지식인이 행동하는 지식인이 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는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다만 우리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우리네 대부분이 이기적이고 이익을 추구하며 남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평범한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올바로 남을 사랑할
수 있다. 붓다도 공자도 예수도 인간이 그런 이기적이고 이익에 나약한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었고, 미워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사랑을 말씀하시면서도
채찍을 들어야했던 예수도, 오직 인자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다고 말한 공자도 사람의
본성에 대한 몽상이나 환상이 없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관련주석】
형병: “중궁仲弓은 염옹冉雍의 자字이다.
자상백자란 인물에 대해 그의 품행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간簡이란 소략함의 뜻이다.”
◉양백준: “『설원』에 보면, 그는 ‘의관을 갖추지 않고
살았다’고 말했고, 공자는 그를 ‘바탕은 아름답지만 세련됨은 없다’라고 평가했다. 주희는 ‘간소한 것’을 ‘괜찮다’라고 평가한 까닭은 ‘일은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서, 백성들을 어지럽히지 않는데 있다’라고 설명했는데, 이 주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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