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성왕의 무례 (춘추좌전.5.22.9.)
▣丙子晨: 병자일은
11월 8일이다.
▣鄭文夫人芈氏·姜氏勞楚子於柯澤: 금택문고본에는 “鄭文公夫人”으로 써서 “公”자가 더 있다. 미芈의 음은 미弭이고 그 글자는 본래 “
▣楚子使師縉示之俘馘: 『정의』: “문헌에
기록된 사광師曠·사조師曹·사견師蠲 등의 부류는 모두
악사이다. 본문의 사진師縉 역시 그렇다.” 장병린의 『좌전독』: “「대사악」에 ‘왕의 군대가 크게 승리를 거두면 한 자리에 모여 개선의 음악을 연주한다(王師大獻, 則會奏愷樂)’, 「악사」는 또 ‘군대가 큰 승리를 거두면 개선의 노래를 가르쳐 따라 부르게 한다(凡軍大獻, 敎凱歌, 遂倡之).’ 이 문구들은 모두 전쟁에 승리하여 개선할 때 악관들이 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도 악관인 사진을 시켜 포로와 적의 귀를 벤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도록
한 것이다.’ 부俘는 전쟁에서 생포한 포로이다. 괵馘의 음은 국國이고 죽은 포로들이다. 고대에는 전쟁에서 적을 죽이면 그의 왼쪽 귀를 잘라 증명했다. 괵자는
본래 괵聝으로 쓰는데, 『춘추』와 『좌전』에서는 주로 괵馘으로 쓴다.
『좌전·선공2년』의 “생포한 자가 250명, 적의
귀를 벤 것이 백여 개(俘二百五十人, 馘百)”는 본문과 같은 부괵俘馘의 일이다. 『좌전·희공28년』의 주석도 함께 참조하라.
▣君子曰: “非禮也. 婦人送迎不出門: 여기 “門”자는 『국어·노어하』의 “계강자가 갈 때 침문을 열고 그와 말을 나누었다(康子往焉, 䦱門與之言)”에서의 “문”자와 같은 뜻으로서 침문을 가리킨다.
▣見兄弟不踰閾: 역閾의 음은 역域이고 문지방이다. 『국어·노어하』에서
계강자와 그의 종조숙모從祖叔母가 얘기를 나눌 때 모두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있는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공자는 “남녀간의 예를 구별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남녀가 서로 만날 때 옛 사람들은 모두
문지방을 넘지 않는 것을 예라 여겼다. 형제조차 그러했다.
▣戎事不邇女器.”: 이邇는 가까이의 뜻이다. 고염무의 『보정』는 명대 부손傅遜의 『좌전속사左傳屬事』의 “융사 즉 군에 관련된 일은 엄숙해야 하고, 여인들이 가까이할 일이 아닌데 하물며 부인들을 군중으로 들였고 게다가 포로들과 잘라 온 귀를 보여준 것임에랴.”라는 설명을 인용하고 있다.
▣丁丑: 정축일은
9일이다.
▣楚子入饗于鄭: 『석경』과 송본, 금택문고본, 그리고 족리본에선 “향饗”자를 모두 “향享”으로 쓴다. 두 글자는
고서에서 통용되었다. 초나라 성왕이 정나라 도읍을 방문했기 때문에 정 문공이 그를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九獻,庭實旅百: 『국어·진어4』: “결국 초나라로 갔는데, 초 성왕이 군례君禮(본래는 “周禮”로 쓰였지만 유월의 주장에 따라 고쳤다)로써 그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구헌과 정실여백……”라는 문구가 보인다. 곧 “九獻,庭實旅百”은 제후가 서로 연회를 베푸는 예가 된다. 『국어』의 위소의 주석과 본문에 대한 두예의 주석에선
모두 구헌은 상공의 향례라고 설명하는데, 『주례·추관·대행인大行人』의 “상공의 예……향례에 구헌을 거행하고(上公之禮, 饗禮九獻)”라는 문구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 『주례』의 내용은 『좌전』의 문장과 다 일치하지는 않는다. 구헌九獻이란 주인이 객에게 ‘술잔을 내리고(酌작)’, 객이 주인에게 ‘술잔을 돌려주며(酢작)’, 주인이 다시 객에게 ‘술잔을 갚는(酬수)’ 일련의 과정을 ‘헌獻’이라 하는데 이것을 아홉 번 하는 것이 구헌이다. 정실여백庭實旅百은 『좌전·장공22년』에도
보이는데, 거기서는 제후가 왕에게 하는 것인데 비해 여기서는 정 문공이 초 성왕을 위해 그런 연회를
베풀고 있다. 려旅란 펼치다의 뜻이다. 정실은 뜰에 예물을 진열했는데 그 예물이 백여 가지가 된다는 말이다. 『후한서·반고전』에 “천 개나 되는 예물을 뜰에 늘어 놓고(於是庭實千品)”란 말이 있어 백여 개의 열 배가 된다.
▣加籩豆六品: 규정된 예 이외에 더하는 것을 “가加”라 한다.
『좌전·희공24년』의 “정 문공이 이를 따랐고, 송공에게 향례를 베풀었다. 예를 더하는 것이 예에 맞다(鄭伯從之, 享宋公有加)”, 『좌전·희공29년』의 “개갈로가 왔는데 연회의
예물을 상례보다 더 풍성하게 했다(介葛盧來, 禮之加燕好)”, 『좌전·소공6년』의
“계손숙이 진나라를 예방했는데, 진후가 그에게 연회를 베풀고 예물을 상례보다 더했다(季孫宿如晉, 晉侯享之有加籩)”등이 모두 이 뜻이다. 『좌전·소공6년』에는 또 “무자가 물러나면서 행인을 시켜 ‘소국이 대국을 섬길 때 삼헌三獻을 넘을 수 없는데, 이제 예를 과도하게 베푸시니(今豆有加) 소신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였다.” 가변加籩과 가두加豆는 삼헌이나 구헌과는 별개의 것이다. 가변과 가두를 베풀 때는
반드시 작위를 더하는 일이 있다. 『주례·천관·변인籩人』을 보면 “가변加籩에 쓰이는 예물로는
시금치(蔆능)·연시감(芡감)·밤(栗율)·말린 고기(脯포) 등이 있다.”
「해인醢人」: “시동이 아헌할 때 더해 주는 두(加豆之實)에는 미나리무침, 토끼젓, 뽕나무버섯, 육장, 파래무침, 기러기젓, 죽순무침, 어젓 등을 채운다.”
그러나 『주례』에선 다만 네 가지를 언급했는데 본문에선 여섯 가지이니 궤식饋食의 변두籩豆·수변수두羞籩羞豆·사변사두四籩四豆 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들 역시 가변·가두라 할 수 있다.
▣饗畢,夜出,文芊送于軍. 取鄭二姬以歸: 초 성왕이 희성의 두 여인을 취하여 돌아갔다는
뜻이다. 정나라는 희성이다.
▣叔詹曰: 장공 17년에
제나라에 억류되었던 정첨이 혹 이 사람일까? 그러나 시간적 거리가 그때와 40년이다. “첨詹”은 『사기·송세가』에는 “첨瞻”으로 쓰고 있는데, 『공양』과 같다.
▣“楚王其不沒乎! 爲禮卒於無別: 무별無別은 남녀의 구별이 없다. 문미와 강씨에게 포로와 적에게 벤 귀를 보여주고, 문미가 성왕을
초나라 군중까지 배웅하며 희성의 두 여인을 취한 일 등을 가리킨다.
▣無別不可謂禮. 將何以沒?”: 숙첨의
말은 여기서 끝난다. 『사기·송세가』: “초 성왕이 이미 정나라를 구원했고 정나라는
그를 위해 연회를 베풀었으며 성왕이 돌아갈 때는 희성의 두 여인을 취해서 갔다. 숙첨은 이에 대해 ‘성왕은
무례를 범하였으니 어찌 제 명에 죽겠는가? 예를 행하는 자리에서 남녀의 구분이 없었으니 이를 보면 그가
패업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였다.”
『좌전』의 아래 문구까지 숙첨의 말로 본 것은 태사공의 해석이다. 문공 원년 초 성왕은 그의 아들 상신商臣에게 죽임을 당한다.
▣諸侯是以知其不遂霸也: 희공 28년
초나라는 진나라에게 성복城濮의 전투에서 패한다. 『주서·태자진편』의 “뒤로 물러나 후퇴하였고, 끝내 패업을 완성하지
못했다(逡巡而退, 其不能遂).”에 대해 “수遂는 끝내(終종)의 뜻이다.” 이것은 끝내 성왕이 패업을 완성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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